유숙(柳淑 ; 1324-1368)
고려 공민왕 때의 정치인 자는 순부(純夫), 호는 사암(思庵) 공민왕의 총애를 입었으나 신돈의 무고로 교살 되었다.
벽란도(碧瀾渡)
久負江湖約(구부강호약한데)
紅塵二十年(홍진이십년이라)
白鷗如欲笑(백구여욕소하며)
故故近樓前(고고근루전이라)
강호에 살리란 약속 오랫동안 져버린채
세속에 묻혀산지 어언 이십년
백구가 나를 비웃으려는 듯
느릿느릿 누각앞으로 다가오네
벽란도는 황해도 예성강 하류에 있는 고려 시대의 중요한 국제 무역항이었다. 사신을 영송하기 위하여 안산(岸山)에 세운 벽란정(碧瀾亭)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여기서의 負는 짐질부가 아니라 져버릴 부 어길 부 이다.
강호와 홍진은 서로 대가 되는 낱말이니 강호는 시골생활을 홍진은 도시생활을 나타낸다.
유숙은 사신을 영접하러 갔는지 사신을 송영하러 갔는지 모르지만 벽란정에 올라 멀리서 날아 오르는 흰 갈매기를 보면서 이제 그만 훌훌 털어버리고 시골에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 시를 읊었으리라. 그 때 그만두지 못하고 신돈의 무고로 참변을 당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문희공에게 올리는 제문 을축 [祭文僖公文] 남을 대신해서 지음. 정도전(鄭道傳)
【안】 문희공은 곧 유숙(柳淑)으로 공의 좌주(座主)임. 유숙의 아들 밀직부사(密直府使) 유실(柳實)을 대신하여 이 글을 지었음.
아아! 아버님은 하늘 같은 덕이 있었건만 보답받지 못하고, 하늘에 사무치는 한이 있었건만 풀지를 못하였으니
【안】 공민왕 무신년(1368)에 유숙이 신돈(辛旽)의 죄를 논하다가 장류(杖流)되었는데, 영광군(寧光郡)에서 교살됨.
불초한 이 자식이 마음 아파 피눈물을 흘립니다. 또 아버님은 행실이 한 세상에 높이 뛰어났건만 기록되지 못하고 공로가 왕실(王室)에 있건만 밝힐 수가 없으니, 불초한 이 자식이 더욱 명교(名敎 인륜(人倫)의 명분을 밝히는 교훈)에 죄를 얻었습니다. 우리 아버님께서는 공민왕[玄陵]이 잠저(潛邸)에 계실 적에 험난한 만리길을 몸소 말고삐를 잡고 갔으며, 공민왕이 정위(定位)되어 동으로 돌아온 뒤에는 조정에 들어가 추기(樞機)의 직무를 장악했으며 유악(帷幄)을 가까이 모셔 조용히 도와서 유익하게 한 바가 많았으며, 변고가 서로 잇다르고 화란이 여러 번 일어났을 적에 위험을 무릅쓰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어려움을 구제하였으니 이것이 왕실에 공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간질하는 말이 한 번 들어가자 몸을 빼어나와 벼슬을 진흙처럼 보고 봉록을 헌신짝처럼 버리면서 흔연하게 그대로 일생을 마칠 양으로 조금도 말이나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았으며, 심지어 죽고 사는 즈음에 이르러서도 확고하여 빼앗을 수 없는 절개가 있었으니 그 행실이 한 세상에 높이 뛰어났다고 할 만한 것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세월이 훌훌히 지나가서 벌써 1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산소에 지석(誌石)을 새겨 묻게 되었습니다. 불초한 이 자식의 더디고 늦춘 죄가 이것으로써 모면될 수는 없습니다만, 아버님의 행실과 공로가 거의 민몰(泯沒)할 뻔하다가 다시 존재하게 되었으니 어찌 만의 하나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날을 가리어 이 비석을 묻으오니 아버님이시여 앎이 있으시거든 저의 술잔을 흠향하옵소서.
祭文僖公文 代人作○按文僖公。卽柳淑。公之座主。代淑之子密直副使實作此文 。○乙丑
嗚呼。有昊天之德而不能報。有窮天之憾而不能釋。按恭愍戊申。柳淑論辛旽杖流。旽縊殺于靈光郡。 不肖孤所以痛心而泣血也。而又行高於一世而不能紀。功在於王室而不能白。則不肖孤尤得罪於名敎也。惟我先考。當玄陵潛邸之日。間關萬里。身負羈絏。及王定位。東還于國。入掌樞機。昵侍帷幄。從容參贊。多所裨益。變故相仍。禍亂屢作。不避危險。苦心焦力。以濟艱難。此功在王室者也。間言一入。抽身而出。泥塗其軒冕。弊屣其爵祿。欣然若將終身。無纖芥之形於辭色。至於死生之際。確乎有不可奪之節。其行可謂高於一世矣。自先考之逝。日月倏忽。至十有八年之久。而誌墓之石始刻。不肖孤稽緩之罪。不以是而免也。而先考之行之功。幾泯而復存。豈非幸之萬一哉。卜于吉日。埋此碑石。先考有知。歆我明酌。
가을비 속에서 (秋日雨中有感)-유숙(柳淑)
他鄕作客頭渾白 到處逢人眼不靑
타향작객두혼백 도처봉인안불청
淸夜沈沈滿窓月 琵琶一曲鄭過庭
청야침침만창월 비파일곡정과정
타향의 나그네 되어 머리가 다 희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사람 만나도 반기지 않는다.
밝은 밤 어둑한데 창에 가득한 달빛
비파곡 한 곡조 정과정을 연주해보노라
홍주(洪州) 집 벽에 쓰다[書洪州家壁]
유숙(柳淑)
무시 이래로부터/自從無始來
나고 죽기 몇 번이나 돌고 돌았는고/生死知幾廻
옆의 사람은 응당 냉시하려니/旁人應眼冷
늙은 이 몸은 마음이 재와 같네/老物已心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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