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최초의 백제사찰 판명..23㎝ 초대형 풍탁도 발굴
(무안=연합뉴스) 송형일 기자 = 전남 강진 월남사(月南寺) 터에 백제시대에 처음 창건된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드러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민족문화유산원(원장 한성욱)은 전남 강진군 의뢰로 월출산 남쪽 산자락에 위치한 월남사 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처마 끝장식 기와인 와당을 비롯한 백제시대 기와들이 출토됨으로써 이곳에 이미 백제시대 창건한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3일 말했다.
지금까지 폐허 상태인 월남사는 고려시대 고승인 진각국사 혜심(1178∼1234년)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헌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 이곳에 맨 처음 사찰이 들어선 시기를 알 수 없었다.
조사단 관계자는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6~7세기 무렵 백제시대 와당을 확보했다"면서 "당시 건축 사정을 고려할 때 와당을 쓴 건물은 왕궁을 제외하고는 사찰밖에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곳에 백제시대 사찰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백제는 불교국가로 알려졌지만 옛 도읍인 공주나 부여, 그리고 제2의 수도로 평가되는 익산 등지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그 시대 사찰이 거의 보고된 바 없고, 더구나 전남 지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그 시대 절터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이번 월남사터 발굴은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나아가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높이 23㎝에 이르는 초대형 고려시대 금동 풍탁(風鐸·풍경), 돌로 만든 차(茶) 맷돌 등이 출토됐다.
이런 대형 풍탁은 현재 10여 점 출토 사례가 알려졌지만 고려시대 유물로는 이번 것을 포함해 3점에 불과하다.
나아가 차 맷돌은 당시 사찰에서 차를 직접 만들어 마셨음을 알려주는 증거로 풀이된다.
이런 차 도구가 출토된 사찰 터로는 강화 선원사뿐이었다.
더불어 청자의자와 화분, 향로, 의자, 약봉(藥棒), 도판(陶板) 등 고려시대 다양한 도자기 유물도 수습됐다.
이들 청자류 중에는 기사(己巳·1329년)라는 연대를 적은 대접 조각도 포함됐다.
또한 건물 벽면을 장식한 건축자재인 도판은 이제까지 국내 모든 유적에서 출토된 수량보다 많은 양이 출토돼 당시 월남사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방증하는 자료라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한성욱 원장은 "이번 월남사터 고려시대 기와는 진도 용장성 출토 기와들과 문양이 비슷해 월남사가 13세기에 중창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nicepen@yna.co.kr
(무안=연합뉴스) 송형일 기자 = 전남 강진 월남사(月南寺) 터에 백제시대에 처음 창건된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드러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민족문화유산원(원장 한성욱)은 전남 강진군 의뢰로 월출산 남쪽 산자락에 위치한 월남사 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처마 끝장식 기와인 와당을 비롯한 백제시대 기와들이 출토됨으로써 이곳에 이미 백제시대 창건한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3일 말했다.
지금까지 폐허 상태인 월남사는 고려시대 고승인 진각국사 혜심(1178∼1234년)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헌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 이곳에 맨 처음 사찰이 들어선 시기를 알 수 없었다.
조사단 관계자는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6~7세기 무렵 백제시대 와당을 확보했다"면서 "당시 건축 사정을 고려할 때 와당을 쓴 건물은 왕궁을 제외하고는 사찰밖에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곳에 백제시대 사찰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백제는 불교국가로 알려졌지만 옛 도읍인 공주나 부여, 그리고 제2의 수도로 평가되는 익산 등지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그 시대 사찰이 거의 보고된 바 없고, 더구나 전남 지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그 시대 절터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이번 월남사터 발굴은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나아가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높이 23㎝에 이르는 초대형 고려시대 금동 풍탁(風鐸·풍경), 돌로 만든 차(茶) 맷돌 등이 출토됐다.
이런 대형 풍탁은 현재 10여 점 출토 사례가 알려졌지만 고려시대 유물로는 이번 것을 포함해 3점에 불과하다.
나아가 차 맷돌은 당시 사찰에서 차를 직접 만들어 마셨음을 알려주는 증거로 풀이된다.
이런 차 도구가 출토된 사찰 터로는 강화 선원사뿐이었다.
더불어 청자의자와 화분, 향로, 의자, 약봉(藥棒), 도판(陶板) 등 고려시대 다양한 도자기 유물도 수습됐다.
이들 청자류 중에는 기사(己巳·1329년)라는 연대를 적은 대접 조각도 포함됐다.
또한 건물 벽면을 장식한 건축자재인 도판은 이제까지 국내 모든 유적에서 출토된 수량보다 많은 양이 출토돼 당시 월남사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방증하는 자료라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한성욱 원장은 "이번 월남사터 고려시대 기와는 진도 용장성 출토 기와들과 문양이 비슷해 월남사가 13세기에 중창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nicepen@yna.co.kr
출처 : 내포문화 시민네트워크
글쓴이 : 내포시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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