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구곡

[스크랩] 오계구곡(梧溪九曲)----김정( 1670∼1737)-봉화 물야계

phllilp7 2012. 10. 24. 07:04

 

 

오계구곡(梧溪九曲)----김정(1670∼1737)

 

梧溪山水蘊奇靈     山自高高水自淸

曲曲風光儘幽絶     漁歌唱晩動新聲

 

 

一曲初尋不用船     巖阿苔經細沿川

高山莫是愚公宅     不及層標鎖

 

 

二曲叢巖勝九峯     玉轎金印露眞容

夕陽古渡長虹斷     面面靑山繞百重

 

 

三曲登臺把玉船     振衣高致當年

勸君且植巖間樹     行路猶知爲護憐

 

 

四曲平郊立豫巖     矮松盈尺碧毿  (監+毛)=?

義爻介石能貞吉     終日何須守一潭

 

 

五曲山回境轉深     幽閒處落長林

池臺暮間來多少     淸賞要須素心

 

 

六曲池臺枕碧灣     山翁何許但雲關

梧陰滿地苔侵屐     赢得蜉生半日閑

 

 

七曲 垂綸上碧灘     小臺超忽更堪看

石梯雲磴扶藜上      滿袖淸風得得寒

 

 

八曲澄泓數畝開      小舠柔楫可沿廻

風花雪月無邊景      終古遊人幾箇來

 

 

九曲林巒更蔚然      鳳凰高影蘸晴川 

眞源滾滾來何自      我欲乘槎一問天

 

 한자 붉은글씨는 정확치않은 글씨임 뭔글자인지 저로써는 모릅니다.아시는분의 도움을 청합니다.아래원문을 보시고요

 

『노봉문집』은 김정(金口 ; 1670∼1737)의 시문집이다. 김정의 자는 사달(士達), 호는 노봉(蘆峯),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이 책은 1863년(철종 14) 그의 현손인 종걸(宗杰)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書)의 별지는 주로 상례(喪禮)에 대한 논술이 많다.

또한 의(議) 중의 「양역수의(良役收議)」는 당시 양역제도(良役制度)를 시행한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황구첨정(黃口簽丁), 백발충오(白髮充伍), 부자병징의 별지는 주로 상례(喪禮)에 대한 논술이 많다.

 또한 의(議) 중의 「양역수의(良役收議)」는 당시 양역제도(良役制度)를 시행한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황구첨정(黃口簽丁), 백발충오(白髮充伍), 부자병징(父子口徵), 백골징포(白骨徵布), 족징(族徵), 인징(隣徵) 등의 폐단이 발생,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유망(流亡)하여 농촌이 황폐되어가는 실정을 지적하였다.

이는 위로부터 기강이 문란한 때문이니

조정에서 분명히 절목(節目)을 제정하여 폐단이 척결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1696년(숙종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708년(숙종 34) 문과에 급제하여 내섬시직장이 되었다.

그 뒤 사헌부감찰, 경성판관, 함경도사, 병조좌랑, 옥천군수, 강릉부사, 사간원정언, 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735년(영조 11) 제주목사 겸 호남방어사 재임시에는 삼천서당(三泉書堂)을 세워 교육에 힘쓰는 등 많은 치적을 올렸다.

청백리로 녹선(錄選)되었다. 영풍의 오천서원(梧川書院)과 제주의 상현사(象賢祠)에 제향되었다.

제주목사로 재임시에는 부두를 건설함에 직접 돌을 날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노봉정사*************

물야면 오록리 창마을에 소재하며 학사 김응조의 고덕을 영모하기 위하여 후손인 노봉 김정(1967-1737)이 건립한 정자로서 만년에 관직을 두고 향리에 돌아와 지방사림의 명현들과 시사공론하며 시영을 즐기며 후학을 기르면서 학업정진하던 곳이다.

 

 

 노봉문집에서 발췌

 

 

출처 : 십승지와구곡을찾아
글쓴이 : mt주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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