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4

죽천 김진규(金鎭圭)와 청화백자 묘지석(墓誌石)

죽천 김진규(金鎭圭)와 청화백자 묘지석(墓誌石)묘지석(墓誌石)은 한 개인의 일대기를 기록하여 무덤에 함께 매장한 유물로, 단순한 무덤 부장품이 아니라 후손들이 가문의 내력을 기억하고, 시간이 흘러 무덤이 훼손될 경우 무덤 주인의 신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특히 묘지석을 백자 청화(靑華)로 제작한 것은 해당 가문의 높은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방증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는 주로 석회나 먹을 이용해 돌이나 도자기 접시에 기록한 후 이를 매장하였으며, 이러한 유물은 개인의 생애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와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묘지석에 기록되는 내용은 일반적으로 무덤 주인의 본관과 이름, 조상의 계보, 생몰 연대, 평생의 행적, 가족 관계, 무덤의 소재와 방향 등을 포함하..

카테고리 없음 2025.02.10

이안눌 자산 이영원에게

덕산현 고산리를 지나다가 은거하는 자선 이영원을 찾아가다. 산꽃이 마을에 가득한데 헤매면서 길을 알지 못해 말을 돌려 동네를 빠져나와 입으로 절구 한 수를 읊었다. 때는 3월 23일이다.(過德山縣高山里, 訪李子善榮元幽居. 山花滿村, 迷不知路, 回馬出洞, 口號一絶, 時三月二十三日)>이안눌 尋君疑入武陵溪, 그대를 찾아 무릉도원에 들어온 듯한데 籬落煙花到處迷.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처에서 헤맨다. 空着馬鞭回出洞, 부질없이 말에 채찍질하며 돌아서 빠져나오니 亂峯斜日子規啼. 어지러운 봉우리에 석양지고 두견새 운다. (≪동악집≫ 권9 담주록(潭州錄)>)[해제]이안눌은 1610년(광해군 2) 2월에 담양부사(潭陽府使)로 임명되었다. 부임하러 내려 갈 때 신창현(新昌縣)을 거쳐 덕산현을 방문했다. 3월 23일 덕산..

카테고리 없음 2025.02.10

이안눌 자산 이영원에게

덕산현 고산리를 지나다가 은거하는 자선 이영원을 찾아가다. 산꽃이 마을에 가득한데 헤매면서 길을 알지 못해 말을 돌려 동네를 빠져나와 입으로 절구 한 수를 읊었다. 때는 3월 23일이다.(過德山縣高山里, 訪李子善榮元幽居. 山花滿村, 迷不知路, 回馬出洞, 口號一絶, 時三月二十三日)>이안눌 尋君疑入武陵溪, 그대를 찾아 무릉도원에 들어온 듯한데 籬落煙花到處迷.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처에서 헤맨다. 空着馬鞭回出洞, 부질없이 말에 채찍질하며 돌아서 빠져나오니 亂峯斜日子規啼. 어지러운 봉우리에 석양지고 두견새 운다. (≪동악집≫ 권9 담주록(潭州錄)>)[해제]이안눌은 1610년(광해군 2) 2월에 담양부사(潭陽府使)로 임명되었다. 부임하러 내려 갈 때 신창현(新昌縣)을 거쳐 덕산현을 방문했다. 3월 23일 덕산..

카테고리 없음 2025.02.09

1894년 면양행견일기,덕산으로 가서 사온 계집종의 이름은 순녀(順女)이고 가격은 600냥이었다.

1894년 2월 미상 음력 2월 [二月] 1일 戊申.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차례(茶禮)를 행하였다. 천우(千又)가 갔다. 김여수(金汝壽)와 남(南), 이(李), 박(朴)의 목수들이 갔다. 순소(舜韶)가 왔다. 김경렬(金景烈)이 왔다. 오늘은 곧 농가 고용 가절(農家雇傭佳節)이어서, 마을마다 농기(農旗)를 내걸..

상가리(가동) 2014.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