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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창극사 (朝鮮唱劇史)

phllilp7 2016. 1. 28. 20:38

 

정의
정노식(鄭魯湜, 1899~1965)이 저술한 판소리에 관한 저서.

개관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는 정노식이 1940년 1월 조선일보사출판부에서 발행하였다. 정노식은 전라북도 김제 만경 출신으로 호는 상곡(象谷), 어조동실주인(魚鳥同室主人)이다.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1922년부터 1925년까지 민립 대학 설립 운동과 물산 장려 운동에 참여하였고,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 창립에 관여했다. 1946년 2월 좌우 합작 통일 전선 체제인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의 중앙집행위원 겸 재정부장,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12월 남조선노동당 중앙본부 중앙위원이었다. 1948년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9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1956년 노동당 중앙검사위원, 1957년 최고인민회의 제2기 대의원 및 상임위원, 1958년 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1961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정노식은 『조선창극사』를 저술하기 1년 전인 1938년에 「조선 광대의 사적 발달과 및 그 가치」를 『조광』(제4권 5호)에 발표하였다. 이 글은 판소리에 대한 기초 지식과 23명의 판소리 광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광대의 인물과 그 역사」 항을 마무리하면서 “이상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男女 唱家의 역사와 그 소리에 대한 비평을 하였으니 短見 寡聞으로 疎漏한 점이 不無하고 인물의 출생지와 年代를 일일이 擧치 못한 것은 스스로 한 遺憾으로 생각하거니와 말하면 倉猝之間에 조사할 시간이 없다. 독자는 이에 대하야 諒解가 있기를 바라노라.”라고 밝히고 있듯이 특별한 준비 없이 이미 알고 있던 판소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작성하였다.
정노식은 「조선 광대의 사적 발달과 및 그 가치」를 발표한 1년 여 뒤에 이 글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광범위한 면담 조사를 하여 『조선창극사』를 상재하였다. 이 책 서문의 “내 조선 창극조 광대소리에 대한 취미를 남달리 가졌으므로 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꼭 빠지지 아니하고 들었고 광대와 면대할 기회만 있으면 언제던지 붙잡고 종(縱)으로 횡(橫)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다소의 견문을 종합하여서 그 인몰(湮沒)을 들추워내고 와전(訛傳)을 교정하고 지이멸렬에서 고구하여 전통을 세워서 역대 명창에 한하여서 그들의 약전과 및 그 예술과 사적 발달을 개술(槪述)코자 하나 그러나 창극조가 어느 시대부터 생기었으며 누가 광대의 효시인지 문헌의 기록이 없는 만큼 촌료를 얻을 빙거가 전혀 없고 전설로는 증좌가 모호하므로 따라서 기술하기가 퍽 곤란하고 의문이 많다. 그러므로 부로(父老)의 구전과 노광대들의 구술에 빙의 참작(依憑參酌)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에서 알 수 있듯이 정노식이 『조선창극사』를 집필하기 위해 1년 동안 고심한 것은 당대의 판소리 광대를 면담 조사하여 광대의 열전(列傳)을 제대로 작성하는 일이었다. 문헌자료가 없으므로 거의 전적으로 부로(父老)의 구전과 노광대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89명의 판소리 광대와 고수 한성준(韓成俊)과 판소리 이론가 신재효(申在孝)를 소개하였다. 정노식의 조사는 세의(世誼)가 있던 명창 전도성(全道成)의 구술에 크게 의존하였고, 또한 자신의 체험과 당대의 명창 및 고로(古老)들의 면담으로 이루어졌다.

내용
조선창극사』는 별다른 장이나 절의 구분 없이 이루어져 있다. 책머리에는 정노식의 지기인 이훈구(李勳求, 1896~1961), 임규(林圭, 1867~1948), 이광수(李光洙), 김명식(金明植, 1891~1943), 김양수(金良洙, 1896~1971) 등이 쓴 다섯 편의 서문이 있다. 여기서는 주로 『조선창극사』의 저술 배경과 성격을 간략하게 논평하고 있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다음에 나오는 저자의 서언(緖言) 역시 『조선창극사』의 저술 동기와 그 과정을 밝히고 있어 이 책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본문은 판소리 이론 및 광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판소리에 관한 역대의 문헌을 정리한 것이고, 둘째 부분은 판소리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을 전개한 것이고, 셋째 부분은 판소리 광대들을 소개한 것이다.
첫째 부분에서는 신위(申緯)의 「관극시(觀劇詩)」, 장지완(張之琬)의 「광한루시(廣寒樓詩)」, 조재삼(趙在三, 순조대)의 『송남잡지(松南雜誌)』, 이유원(李裕元)의 「가오악부(嘉梧樂府)」, 정범조(丁範祖, 1723~1801)의 『해좌집(海左集)』, 윤달선(尹達先)의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1852), 이건창(李建昌)의 「배령이수(裵伶二首)」 등 정조에서 고종 때까지의 여러 사람이 쓴 시문에서 판소리와 관련 있는 것을 소개하였다.
둘째 부분은 판소리 전반에 대한 기초 지식을 소개함으로써 판소리 이해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우조 계면조의 분석」에서는 창극조에 기본이 되는 조(調)에 우조와 계면조가 있는데, 우조는 “기해단전(氣海丹田) 즉, 배 속에서 울어나오는 소리이니 담담연(淡淡然) 온화(溫和)하고도 웅건청원(雄建淸遠)한 편이고, 계면조는 후설치아(喉舌齒牙) 간에서 나오는 소리이니 평평연(平平然) 애원(哀怨)하고도 연미부화(軟美浮華)한 편이다.”라고 했다. 「창극조의 조직과 장단」에서는 판소리 장단에는 진양조장단, 늦은중모리장단, 중중모리장단(엇중모리장단), 중모리장단, 자진모리장단, 휘모리장단(단모리장단) 등 6계단으로 낮고 높은 장단을 분류하였다. 「대가닥」에서는 동편제와 서편제, 중고제, 호걸제가 있으나 대체로 동서로 나누고 중고제와 호걸제는 극소하다고 했다. 또 동편제는 우조를 주장하여 웅건청담하게 하는데 호령조가 많고 발성 초가 썩 진중하고 구절 끝마침을 꼭 되게 하여 쇠마치로 내려치는 듯하고, 서편제는 계면을 주장하여 연미부화하게 하고 구절 끝마침이 좀 지르르 끌어서 꽁지가 붙어다닌다고 했다. 동편제는 담담연(淡淡然) 채소적(菜蔬的)이라 하면, 서편제는 진진연(津津然) 육미적(肉味的)이다. 동편제는 천봉월출격(千峰月出格)이라 하면, 서편제는 만수화란격(萬樹花爛格)이다. 중고제는 비동비서의 그 중간인데, 비교적 동편제에 가깝다. 그리고 동편제는 송흥록(宋興祿)의 법제를 표준하여 섬진강 동쪽의 운봉(雲峯)·구례(求禮)·순창(淳昌)·흥덕(興德) 등지의 소리이며, 서편제는 박유전(朴裕全)의 법제를 표준하여 섬진강 서쪽의 광주(光州)·나주(羅州)·보성(寶城) 등지의 소리이다. 중고제와 호걸제는 염계달(廉季達)과 김성옥(金成玉)의 법제를 계승하여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대부분 유행하는 소리이다.
「창극의 고전 종류」에서는 광대의 판소리로 ① <장끼타령>, ② <변강쇠타령>, ③ <무숙이타령>, ④ <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 ⑤ <심청전(沈淸傳)>, ⑥ <흥보전(박타령)>, ⑦ <토별가(수궁가,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⑧ <춘향전(春香傳>, ⑨ <적벽가(화용도)>, ⑩ <강릉매화전(江陵梅花傳)>, ⑪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⑫ <옹고집(壅固執)> 등 12판(마당)이 있는데, 보편적으로 애창되는 것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토별가, 적벽가라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창극조의 유래와 그 변천 발달」에서는 판소리의 발생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판소리의 연원을 신라시대 화랑에서 찾았고, 화랑이 숭배하던 경신(敬神) 행위는 무녀의 굿으로 변천하고 가악(歌樂)을 힘쓰던 것은 한량에게로, 광대의 창극조로 변천하였다고 하였다. 판소리와 무녀의 굿 사이에 유사한 점이 많다는 사실, 특히 양자 사이에 너름새와 창조가 방불하고, 대부분의 소리 광대가 재인 무인 계급에서 출생하였다는 점, 그리고 춘향전이 무속적 근원설화에서 유래했다는 점 등에 주목하여 판소리의 직접적인 기원을 전라도의 무녀의 굿으로 보았다.
「창극조 광대의 효시」에서는 전도성 명창의 구술에 의해 하한담과 최선달을 판소리 광대의 효시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광대의 약전과 및 그 예술」에서는 89명의 판소리 창자와 고수 한성준 그리고 판소리 이론가요 교육자인 신재효에 대해 소개하였다. 정노식은 전도성 명창의 구술과 자신의 체험, 당대 명창 및 고로들의 면담 등을 통해 광대를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인물은 하한담(河漢譚)·최선달(崔先達)―전도성, 염계달(廉季達)―경성 음률가, 송수철(宋壽喆)―이동백(李東伯), 김창룡, 박만순(朴萬順)―향부로(鄕父老)·이석정, 이날치(李捺致)―임규, 전해종(全海宗)―전도성, 김정근(金定根)―김창룡, 정흥순(鄭興順)―이동백, 김창록(金昌祿)―흥덕 모음률가, 오끗준―이동백·김창룡, 배희근(裵喜根)―이동백, 김찬업(金贊業)―음률가 최병제, 조기홍(趙奇弘)―이동백·김창룡, 박기홍(朴基洪)―이동백·김창룡·현석년, 성민주(成敏周)―전도성, 김봉학(金奉鶴)―이동백, 신학준(申鶴俊)―전도성, 김석창(金碩昌)―이동백·김창룡, 정정렬(丁貞烈)―체험·정재섭, 송업봉(宋業奉)―전도성, 강소춘(姜小春)―체험, 김녹주(金綠珠)―이화중선(李花中仙)·김초향(金楚香, 1900~1983) 등이다. 기술 방식은 대체로 창자의 간략한 생애 및 소리 공부 과정과 소리의 특성 등을 소개하고, 마지막에는 장기나 더늠 등을 구체적으로 예시하였다. 남자 창자로는 비가비 광대인 권삼득(權三得, 1771~1841)과 가왕 송흥록(宋興錄, 순조~철종대)을 비롯하여 1930년대의 근대 오명창인 김창환(金昌煥),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등 81명의 명창을 소개하였다. 여류 명창으로는 여류 명창의 비조인 채선(彩仙)을 비롯하여 허금파(許錦波), 강소춘(姜小春), 김해 김녹주(金綠珠), 이화중선(李花中仙), 김초향, 박녹주(朴綠珠), 김여란(金如蘭) 등 8명의 명창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부록으로 고수인 한성준(韓成俊)과 판소리 이론가이자 교육자인 고창의 신재효를 소개하였다.
조선창극사』에 소개된 명창들의 더늠을 작품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춘향가의 더늠으로는 장자백(동편)의 <광한루경(적성가)>, 김세종(동편)의 <천자뒤풀이>, 이석순의 <춘향방사벽도>, 송광록의 <긴사랑가>, 고수관의 <자진사랑가>, 모흥갑의 <이별가>, 박유전(서편)의 <이별가>, 유공렬(동편)의 <이별가>, 정정렬(서편)의 <신연맞이>, 채선(동편)의 <기생점고>, 전상국(동편)의 <공방망부사>, 장수철(동편)의 <군로사령>, 조기홍(동편)의 <십장가>, 염계달의 <남원 한량(춘향 정절 찬미)>, 이날치(서편)의 <옥중가(동풍가)>, 한경석(서편)의 <옥중가(천지삼겨)>, 송재현(동편)의 <옥중가>, 박만순(동편)의 <옥중가(몽유가)>, 오끗준(동편)의 <봉사해몽>, 성창렬(동편)의 <장원급제>, 송업봉(동편)의 <어사노정기>, 황호통(중고)의 <만복사불공>, 송만갑(동편)의 <농부가>, 강재만(동편)의 <춘향편지(어사와 방자 상봉)>, 백점택(중고)의 <박석티(어사 춘향집 문전 당도)>, 허금파(동편)의 <옥중상봉가>, 임창학의 <어사출두>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심청가의 더늠으로는 김채만(서편)의 <초앞>, 김제철의 <심청탄생>, 백근룡(서편)의 <곽씨부인장례>, 주상환(서편)의 <젖동냥>, 최승학(서편)의 <부친봉양>, 정창업(서편)의 <중타령>, 김창록(동편)의 <부녀영결>, 이창윤(서편)의 <부녀영결>, 전도성(동편)의 <범피중류>, 전해종(동편)의 <심청환세> 등을 소개하고 있다. 흥보가의 더늠으로는 최상준(동편)의 <놀부포악>, 김창환(서편)의 <제비노정기>, 김봉문(동편)의 <박타령(박물가)>, 권삼득의 <제비가>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수궁가의 더늠으로는 김거복(서편)의 <용왕탄식>, 김찬업(동편)의 <토끼화상>, 유성준(동편)의 <토별문답>, 김수영(서편)의 <토사호비>, 신학준(동편)의 <용궁좌기>, 송우룡(동편)의 <토끼 배 가르는데>, 신만엽의 <토끼 배 가르는데>, 백경순(서편)의 <소지노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적벽가의 더늠으로는 김창룡(중고)의 <삼고초려>, 서성관(동편)의 <동남풍 빌고 나서는데>, 주덕기의 <조자룡탄궁>, 박기홍(동편)의 <군사설움(사향가)>, 이창운(중고)의 <원조타령>을 소개하고 있고, 이외에 한송학(중고)의 <까토리 해몽>, 송흥록(동편)의 단가 <만학천봉가>, 정춘풍(동편)의 단가 <소상팔경>, 이동백(중고)의 <새타령>, 김해 김녹주의 단가 <편시춘>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더늠 중에는 전도성의 <범피중류>처럼 일부는 창자의 소리를 직접 듣고 채록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정 이본을 저본으로 한 것이다. 춘향가 더늠의 저본은 이해조의 『옥중화(獄中花)』, 이광수의 『일설춘향전(一說春香傳)』, 최남선의 『古本春香傳』,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였고, 심청가 더늠의 저본은 광동서국·박문서관의 공동명의로 발행한 『증상연정 심쳥젼』(10판)이었다. 그리고 흥부가와 장끼전 더늠의 저본은 신명균 편·김태준 교열, 『조선문학전집(朝鮮文學全集)』 제5권 소설집(1)에 수록된 『흥부전』(興甫傳)과 『장끼전』이었고, 수궁가 더늠의 저본은 신명균 편·김태준 교열, 『조선문학전집』 제6권 소설집(2)에 수록된 『토끼전』과 정노식의 소장본인 신재효의 『토별가』였으며, 적벽가 더늠의 저본은 유일서관에서 발행한 『젹벽가』였다.

특징 및 의의
조선창극사』는 여러 가지 미비하고 부정확한 점 등이 산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소리 연구사에서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판소리를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울 가치 있는 예술로 인식하고, 판소리 광대들을 당당한 예술가로 높이 평가했다. 둘째, 판소리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저술로서, 판소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셋째, 판소리 연구에 필요한 소중한 자료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자료집이다. 신위의 「관극시」와 조재삼의 『송남잡지』, 이유원의 『가오악부』 등 조선 후기의 여러 문헌에서 판소리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한 문헌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판소리 광대의 효시라고 하는 하한담과 최선달을 비롯하여 89명에 달하는 판소리 광대의 열전은 판소리 연구에 있어서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자료이다. 넷째, 판소리 전반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판소리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참고문헌
정노식론(유영대, 구비문학연구2, 한국구비문학회, 1995), 정노식의 행적과 조선창극사의 저술 경위 검토(이진오, 판소리연구28, 판소리학회, 2009), 조선창극사(정노식, 조선일보사출판부, 1940), 조선창극사 소재 심청가 더늠의 문제점(김석배, 문학과언어18, 문학과언어연구회, 1997), 조선창극사의 성격과 의의(정하영, 판소리연구5, 판소리학회, 1994), 조선창극사의 비판적 검토1(김석배, 고전문학연구14, 한국고전문학회, 1998).

출처 : 가야산역사문화연구회
글쓴이 : 내포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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