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주변의 문화재

내포

phllilp7 2015. 4. 23. 04:50

內浦’란 우리말로 ‘안 개’이다. 즉 바다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灣에 들어선 포구를 뜻하는 말이다. 충남 서북부 지역은 바로 이와 같은 안 개가 다수 발달한 곳이다.

 

충청도는 자연환경과 문화 환경이 확연히 다른 두 개의 문화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포지역 금강문화권 또는 공주문화권과 구분할 수 있겠다.

내포의 정신은 변화에 대응하고 수용할 줄 아는 개방성과 진취성이 특징이며 다양한 현실문제에 참여하고 비판과 실천을 추구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적 분위기와 의병운동 동학의 움직임이 크게 발현한 그곳이 내포지역이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주역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사, 독립전쟁의 최고의 승리를 안겨준 청산리 전투의 백야 김좌진 장군, 상하이 홍커우공원의 도시락 폭탄 영웅 매헌 윤봉길 의사 등이 모두 내포지역 출신이다

내포지역은 외국문물 수용의 창구 역할을 해 왔던 역사적 특징이 있다.

고려말 내포인 백이정(1247년~1323년)이 성리학 수용에 앞장섰고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대부분 내포출신이다.

불교, 유교, 천주교, 동학 등 많은 역사·문화적 자산은 내포지역만의 문화적 다양성, 개방성, 진취성으로 해석된다

 

내포 - 광의로는 홍주목과 관련한 홍주진관 소관의 평택을 포함하는 20여 전지역을 가리키나, 가장 일반화된 개념으로는 조선시대 가야산 주위의 10여개 고을 즉, 홍주, 보령, 결성, 해미, 태안, 서산, 면천, 당 진, 덕산, 예산, 신창 등의 지역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따라서 오늘날 서산시, 태안군, 당진군, 예 산군, 홍성군 옛 보령현 지역(천북면, 청라면, 청소면, 주포면, 주교면, 오천면, 구 대천시중 대천1 동, 대천2동, 동대동, 화산동) 옛 신창현 지역(아산시 도고면, 신창면, 선장면), 옛홍주 지역이었다가 청양군으로 편입된 지역(청양군 화성면, 비봉면, 남양면중 백금리, 신왕리, 용마리, 흥산리)이다. 즉, 내포는 홍성 ․ 예산 ․ 당진 ․ 서산 ․ 태안 등 5개 시군과 보령 6개면과 보령시 4개동, 아산시 3개면, 청 양군 2개면 지역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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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라는 말이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고려시대에 사용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조선초기에 발간된『고려사』에는 이미 내포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 내용은 주로 왜구가 내포지역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였다는 내용들이었다.3)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내포라는 주로 조선후기의 왕조실록에서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宣祖대 비변사는 “공주(公州) 진관의 법이 잘 다스려질 경우 금강(錦江) 일대는 근심할 것이 없을 것이며, 홍주(洪州) 진관의 법이 잘 다스려질 경우 內浦나 연해(沿海) 등지를 모두 방어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일은 간단하고 공은 많은 것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상소를 올렸다.

『증보문헌비고』권34 여지고 관방 해방조에는 충청도 지역의 주요 포구로 56개소가 거론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아산부터 결성까지의 포구는 44개소에 달한다.1)

아산 : 공세곶포, 당포, 시포, 단장포

홍주 : 대진포, 전선창, 안면곶, 원산도, 석비포

면천 : 전선창, 대진포, 창택곶, 가리도

당진 : 당진포, 채원포, 맹곶

서산 : 평신진, 왜현포, 남곶,위곶, 안면곶, 요견량, 파지도, 대산곶, 백사정, 창포

태안 : 안흥진, 소근포, 부포, 안지영산곶, 대소산곶, 굴포, 안흥량, 이산곶, 신곶, 백사정

결성 : 동산포, 석곶포, 장포, 모산당포

 

1. 영조 13년 이광좌는 “호서(湖西) 내포 18개 고을이 이미 적지(赤地)로 판명되었으니, 청컨대 박사창(朴師昌)을 어사(御史)로 파견해 떠도는 백성을 안집(安集)시키고, 수령(守令)을 염찰(廉察)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는데, 내포에 18개 고을이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포 지역 가운데 18개 고을이 흉년이 들었다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8) 그런데 『여지도서』에서는 홍주 진관에 속하는 18개 고을으로 서천, 면천, 서산, 태안, 온양, 평택, 홍산, 덕산, 청양, 남포, 비인, 결성, 보령, 아산, 신창, 예산, 해미, 당진 등을 기록하였다.9) 본래 조선초기 『경국대전』에서는 홍주진관에 위의 18개 고을 외에 홍주와 대흥이 기록되어 있었다. 즉 내포는 모두 20개 고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지도서』에서 두 고을이 빠진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2. 이중환은 가야산 주변, 오서산 북쪽의 11개 고을을 내포지역이라 칭하였는데, 이는 홍주, 보령, 결성, 해미, 태안, 서산, 면천, 당진, 덕산, 예산, 신창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중환의 주장에 의하면, 가야산, 오서산과 함께 주요한 랜드마크가 되는 곳이 유궁진이다. 최남선은 “내포라 함은 충청도 서남쪽의 가야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고을로서 삽교천의 상류, 유궁진의 안쪽에 있다 해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였다.12) 여기서 삽교천의 상류, 덕산의 유궁진은 오늘날 구만포 부근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중환이 말하는 내포지역은 위에서 본 이광좌의 내포지역 개념보다 훨씬 좁아진 지역이 된다

 

3. 천주교쪽에서는 아산, 온양, 신창, 예산, 대흥, 면천, 당진, 덕산, 해미, 홍주 등 10개 고을을 ‘상부 내포’라 부르고, 태안, 서산, 결성, 보령, 청양, 남포, 비인, 서천, 한산, 홍산 등 10개 고을을 ‘하부 내포’라 칭하였다고 한다.13) 즉 홍주진관에 속했던 고을들을 북부와 서남부로 나누어 상부내포, 하부내포라 부른 것이다.

 

4. 오늘날 우리는 내포지역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임선빈은 충남의 전통문화권을 ‘내포문화권’과 ‘금강문화권’으로 나누어 부르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14) 여기서 그가 말하는 내포문화권은 이중환이 말한 내포지역을 가리킨다. 즉 홍주진관에 속했다 하더라고 오서산 이남의 남포, 비인, 서천, 청양, 홍산 등은 금강문화권으로 넣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영준은 청양, 홍산, 한산 3개 군현은 금강 수계에 속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내포지방에 속한다고 볼 수 없지만, 교회사적인 측면에서는 등질지역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홍주진관에 속하는 20개 고을을 모두 내포지방으로 보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찬승 충남대 국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