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사 광자대사 부도비
태안사
일주문 옆에 부도밭이
있습니다.
이곳에 늦은 저녁 햇살이 비칩니다.
저녁 햇살로 물든
광자대사 부도 바로 옆에 광자대사 부도비가
있습니다.
얼핏 봐도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부도비입니다.
부도비 귀부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광자대사 부도비의
비신
부도비의 비신은 옆에 따로 세워져
있습니다.
비신 일부는 부서져 없어졌고, 비문도 거의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조선금석총람>에 일부 글자가 빠진 채로 그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는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가 출가하여 법을 받고 전하는 과정,
효공왕과의 불심에 대한 문답, 고려 태조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자대사 윤다는 경문왕 4년(864년) 4월 5일에
태어나, 8세에 출가하였습니다. 사방을 다니다가 동리산에서 수도를 하였고, 그 뒤 가야갑사(迦耶岬寺)에서 계(戒)를 받아, 다시 동리산으로
돌아와 머물렀습니다. 고려 혜종 2년(945년)
2월 2일에 82세로 입적하자, 왕은
'광자(廣慈)'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부도비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난 광종 원년(950년)
10월 15일에 세워졌습니다.
- 광자대사 부도비
부도비는 귀부와 이수만 있습니다. 제자리에 비신은 없지만, 비신 받침 옆면에
새겨진 구름 문양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 귀부
머리
귀부는 목이 짧아 보이기는 하지만, 머리의 표현이나 몸 앞쪽의
조각이 매우 뛰어납니다. 왕방울 같은 눈과 큼직한 코, 비쭉 삐져나온 송곳니, 목의 비늘 등 어느 한 곳 소홀하게 다룬 곳이
없습니다.
- 이수
이수에는 네 귀퉁이마다 용머리가 돌출되어 있고, 맨
위에 불꽃에 휩싸인 여의주 셋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제액 위쪽에는 날개를 활짝 편 가릉빈가가 돋을새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꿈틀거리는
듯 매우 장엄한 가릉빈가는 연곡사 동부도와 북부도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 부도비 뒷면
부도비
뒷면의 모습입니다. 발가락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나 있고, 돼지 꼬리를 닮은 꼬리는 시계방향으로 꼬여 있습니다.
- 광자대사 부도비
광자대사 윤다는 죽음을 앞두고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생(生)이란 유한한 것이며, 멸(滅) 또한 그
시기가 미정(未定)한 것이다. 내 이제 떠나고자 하니 각기 뜻있게 잘 살도록 하라. 부처님께서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는 곧 너희의 위대한
스승이다."라고 하셨다. 나 또한 이 말로 너희에게 당부하노니 너희가 이를 잘 지킨다면 나는 죽은 것이 아니다.
*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는
별해탈(別解脫)이라고 하는데,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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