姚秦의 鳩摩羅什이 한역하고 宋의 戒環이 요해를 붙인 ≪妙法蓮華經≫(약칭‚ 法華經) 7권본에 세조가 구결을 달고 간경도감에서 번역하여 간행한 책으로 7권의 목판본이다. 원간은 권수의 “天順七年(1463)九月初二日…尹師路等 謹上箋”의 기록에 따라 1463년(세조 9)으로 추정된다. 같은 날짜의 ≪세조실록≫ 기사 “刊經都監 進新刊法華經”의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 ≪楞嚴經諺解≫에 이은 간경도감의 두 번째 불경언해서인 셈이다.이 책의 체재와 판식 등은 앞서 간행된 ≪능엄경언해≫와 대체적으로 일치하나 부분적으로 달라진 점도 있다. 一如의 集註가 구결과 언해 없이 원문만으로 함께 실려 있는 점‚ 저본인 원전에 따라 한문 원문에 권성점이 찍혀 있는 점‚ 언해문의 한자 독음이 ≪능엄경언해≫의 경우 해당 한자의 크기와 같았으나 여기서는 작아진 점 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채재면에서 더 치밀해지고 독자의 편의를 더 고려한 결과로 이해된다.원간본은 현재 공공 도서관과 개인 소장으로 전하고 있으나 전질로 전하는 일은 없고 대개가 낙질본이거나 영본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古 1730-14B>는 권1과 권2의 전반부(장1~173)를 缺한 낙질본이고‚ <一簑古貴 294.333-B872m -v.4>와 <가람 古貴 294.333-B45e-v.7>은 각각 권4(장182~203)‚ 권7(장39~104)의 일부분만 전하는 결락 영본이다. 후대의 복각본인 <가람 古 294.333-B872ma-v.1-14>에 배포본으로 남아 있는 권2(장174~266)‚ 권3(장82~202)‚ 권4도 원간본 영본이다.원간본을 판하로 하여 복각한 책 가운데 刊記가 확인되는 것으로는 3종이 현전한다.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것은 1523년(중종 18)의 복각본이다. “嘉靖二年癸未(1523)月有日誌”(7: 122a)의 誌記를 가진 책이 그것인데 간행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각수와 시주질로 보아 지방의 한 사찰로 추정된다. 판심의 黑口 속에 나타나는 각수명을 근거로 추정하면 <一簑古貴 294.333-B872mh-v.2>와 <古 1730-14C-3>의 권2‚ 6 영본 2책이 이 판본에 해당된다. 변란은 대개 쌍변이나 단변으로도 나타나고 판심제가 ‘法’으로 된 곳이 드물게 있다.두 번째 복각본은 1547년(명종 2)의 나주 쌍계사판이다. “嘉靖二十四年乙巳(1545)仲春 全羅道羅州南面中峰山雙溪寺開板”(3: 52a) 또는 “嘉靖二十六年丁未(1547)六月上斡(澣의 잘못)日 全羅道羅州地中峰山雙溪寺重刊留”(7: 122b)의 간기를 가진 책으로 현전하는 복각본 가운데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는 책이다. 간기가 없는 권차의 경우‚ 흑구와 흑어미 안에 음각된 각수명이 판본을 밝히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권말의 <音釋>이 삭제된 것도 이 판본의 한 특징이다. 변란이 대부분 단변으로 되어 있고‚ 화문어미가 섞여 있을 뿐 아니라 판심제도 ‘法華經‚ 法華‚ 法’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규장각 소장의 <古 1730-14c-a‚c>~<一簑古貴 294.333-B872m-v.2‚5> 등은 비록 인출의 선후 차이는 있으나 모두 쌍계사판이다. 규장각에는 이 판본이 상당수 소장되어 있으나 다 합쳐도 전질이 되지는 않는다.세 번째 복각본은 1768년(영조 44)의 덕산 가야사판이다. “乾隆二十九年閼逢涒灘(甲申:1764)仲秋日 德山伽倻寺開刊”(1: 129b)이 가장 빠른 간기이고‚ “戊子(1768)仲春上澣 畢工 伽倻寺持殿山人 戒沾”(7: 122b)이 가장 늦은 誌記이다. 변란이 사주단변이고‚ 판심에 白口가 많이 나타난다. 쌍계사판과는 달리 권말의 <音釋>도 복각되어 있다. <가람 古 294.333-B872ma-v.1-14>‚ <一簑古 294.333-B872ma-v.1-2>‚ <古 1730-14c-b>‚ <一簑古貴 294.333-B872m-v.3>가 여기에 속하는데‚ 특히 가람본에는 원간본이 배포되어 있어 가야사판만으로는 낙질이 된다.이들 복각본은 원간본을 판하로 한 복각본이므로 언어사실에 있어서는 15세기 국어자료로 이용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이용되어 왔다. 원간본 전질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 복각본의 역할이 적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특히 방점을 비롯하여 본문 일부에 오각과 탈각이 있으므로 이용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원간본 ≪法華經諺解≫에 나타나는 국어학적 특징은 대개 ≪능엄경언해≫와 공통된다. 불교용어와 관련된 독음표기에서 ‘阿難난’의 ‘’‚ ‘般若’의 ‘’‚ ‘解脫’의 ‘’ 등과 같이 ≪능엄경언해≫에서 ‘‚ 반‚ 갱’로 인쇄되었거나 埋木 등으로 교정되었던 한자음들이 처음부터 교정된 이후의 모습대로 판각되고‚ 체언 말음이 i‚ j인 경우에 주격조사 ‘ㅣ’가 중복 표기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능엄경언해≫에서 극히 드물게 쓰였던 ‘ㅸ’ 표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점 등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법화경언해≫에는 16세기 국어의 모습을 보이는 용례도 드물게 나타난다. ‘法化 돕소와(2: 175a)’‚ ‘몯오면(3: 157a)’은 겸양법 선어말어미 ‘‚ ’가 후행어미의 모음에 의해 동화된 예이고‚ ‘숨겨 촐(6: 175a)’의 ‘초-’(藏)는 ‘초->초->초-’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예이다.한편‚ 언해의 저본이 된 ≪法華經≫은 앞서 간행되었던 ≪釋譜詳節≫ 권13~21과 ≪月印釋譜≫ 권11~19에도 번역되어 실려 있었는데‚ 이들의 현전본들과의 비교연구가 가능하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는 抄譯으로 의역의 성격을 가지는 데 비해 ≪법화경언해≫는 完譯으로 직역의 성격을 가지는 문헌이라 할 수 있다.1960년 동국대학교에서 원간본과 1523년 복각본‚ 그리고 쌍계사판을 모아 완질로 하여 2장을 1면에 수록한 축쇄 영인본이 간행되었고 1977년에 대제각에서 이를 다시 재영인한 바 있다. 1997년에 홍문각에서 원간본(낙질) <古 1730- 14B>를 저본으로 한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李浩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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