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리(가동)

불심을 밝혀주는 빛 석등 /가야사지 석등

phllilp7 2012. 9. 28. 05:50

 

가야사지에서 보덕사 석등 추정 '간주석' 발견

보덕사 석등 추정 '간주석' 발견

예산 가야사지 부근 돌밭에서… 부여박물관에 감정평가 의뢰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 산하 보덕사(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석등(충남도 문화재 자료 제183호)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는 중대석(간주석)이 발견돼 화제다.
지난달 31일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지 부근의 돌밭에서 이곳에 사는 주민 이기웅씨에 의해 발견된 간주석은 석등의 중대석으로 길이 127㎝, 둘레 112㎝의 크기다.

평소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이씨는 “폐사된 가야사지의 금탑자리인 보웅전에 있던 구기(舊基)탑 석재 및 가야사지 석등으로 추정되는 연화사 석등이 지난해 10월 가야산순환도로 공사 중 발견됐다”며 “또 마을하천에서 발견된 석등의 연화 하대석과 보덕사의 화사석 원부재인 석등과 연관 있을 듯 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가야사지인 상가리 일대에는 발굴되지 않은 많은 불교 유물과 문화재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돼 지역주민 등 관계기관의 세심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며 “대원군이 가야사지 절을 불 태워 당진 면천 등 외지로 반출된 문화재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관련 예산군 관계자는 “이번에 발견된 간주석은 부여의 국립박물관에 예비평가를 의뢰했다”며 “감정평가 끝나면 후속조치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가야사지(伽倻寺址)는 온천지인 예산군 덕산면 소재지에서 서편으로 약 4㎞ 지점에 있다.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다 ' 해미가야산의 동남쪽은 토산이고 서북쪽은 돌산이다. 동쪽에 있는 가야산 동학은 곧 상고 때 상왕(象王)의 궁궐터이고 서쪽에 있는 수협동은 바위와 폭포가 뛰어나게 기이하다'라고 적어 가야사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한편 가야사지에는 구한말 풍운아인 흥선 대원군이 아버지 남원군을 이장할 명당자리를 찾다가 '2대에 걸쳐서 왕이 나올 자리'라고 하여 이곳 절을 불을 질러 없애버리고 파주에 있는 부친 묘소를 이곳에 이장했다. (중도일보)

 

* 가야사지에서 발굴된 석등은 부여국립박물관에 소장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이전의 석등간주석으로 인근에서 연화석등의 하다석이 비슷한 시기에 발견되었습니다.

마을 고노의 증언에 의하며 인근에서 보덕사석등(화사석)도 발견되어 마을분들이(50~60년당시이장) 상가리에 있는 보덕사로 반출했다는 증언입니다.

화사석과 간주석 연화하대석등 동일하거나 비슷한 시기에 (상가리 미륵불과 동일하 시기인 950년대로 주장하는 논문)조성되었던 석등으로 보여집니다. 석등간주석이 발견된 일원에서는 수많은 지대석과 절집의 초석등이 발견되며 가야사지 우물(연못)터와 화장실터, 토제도수관등 발견되며 본격적으로 발굴하여 가야사지의 규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충남도와 예산군은 7월 남연군묘일원(가야사지)의 문화재보호지역축소 및 해지는 가야사지일원의 난개발로 훼손이 우려됩니다.

해지나 축소전에 가야사지를 발굴하여 규명후 해지 및 축소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될 10월부터 발굴을 통하여 가야사지의 규모와 사역에 정확히 파악되었으면합니다.

100여년 전부터 주민의 노력으로 지켜저온 가야사지와 상가리지역의 문화재가 보호되어햐할 것이다.

가야사지 발굴을 통하여 가야사지및 예산군과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데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그 동안 가야사지에서 여러 사정으로 반출된 수 많은 문화재가 (국보로저정된 요령과 석탑들)다시 제자리를 찾았으면 ....

 

 


석등의 상징성

우리나라에서 전래되고 있는 석등은 6세기 초에 조성된 익산의 미륵사지 석등에서 기원을 찾을수있는데 정형적인 석등양식으로는 무량수전앞석등(국보제17호)을들수있으며, 이형석등으로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과 화엄사 각황전 앞 고복형석등(국보 제12호) 등을 비롯하여 관촉사 석등(보물 제232호)처럼 4각형인 방형양식의 석등 등이 있다. 석등은 사찰의 성보물에서 유래되었지만 능묘뿐만 아니라 현재는 고급주택의 야간을 장식하는 용도로까지 다양하게활용되고있다.

그러나 사찰에 조성되는 석등은 장식용 등과 달리 특별한 요건을 구비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석등이 어둠을 밝히는 실용재일 뿐만 아니라 진리를 밝힌다는 종교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정형적인 석등으로 알려진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석등의 하대에는 음각면의 안상(코끼리 눈)이 2조씩 모두 8개가 새겨져 있다.

불교 조형물에는 코끼리 눈 모양의 문양이 들어가는 특징이 있는데 코끼리를 성스럽게 여기는 인도 전통에 따라 불교조성물에 들어가는 요소가 된 것 같다. 또한 석등아랫부분의 연화대석에는 팔각으로 연꽃이 덮혀 있고 그 꼭지에 는 귀꽃을 돌려 장식하여 신성한 것을 모신다는 의미를 갖추었다. 연화대위의 간주석도 8각으로 만들어 불교수행법인 8정도를 상징하였으며 간주석 위에는 다시 연꽃을 장식하여 불火이 들어 있는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불보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꽃의 받침을해야 하므로 화사석안의 불火이 곧 불佛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佛의 빛이 4면이 뚫려 있는 화창을 통해 사방으로 무명의 중생계를 비추고 있는 형상이다. 또한 화사석의 창 사이에는 인물상을 양각으로 새겨 놓았는데, 이 인물상은 발부분이 부처처럼 연화대에 서있으나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니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신장상이 아니라 보살상이이석등을 수호하는 것은 화사석 안에 들어 있는 불火이 바로 부처를 상징하고 있음을 다시확인해준다.


이형석등의 의미

이처럼 불교적 석등은 기단부에는 반드시 연꽃장식을 해야 하며 화창이 있는 곳의 받침석도 연꽃으로 장식하여야 한다. 이형석등을 조성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상징물을 변경시킨다.

예컨대 8각 기둥대신에 지혜를 상징하는 사자상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고, 함포고복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평화로움과 풍요를 상징하는 북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형석등 가운데 중간 기둥이 사자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쌍사자 석등은 지혜를 통해 완성(성불)하는 것을 상징한다. 문수보살도 사자상을 타고 있는데 사자는 바로 불교에서는 지혜를 상징하는 짐승이다.

부처의 설법을 사자후라고 하는데, 부처의 설법이 모든 중생의 번뇌를 제압한다는 것을 의미 하기도 한다. 충북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을 보면 두 마리 사자중 한 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벌린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는 입을 벌린 것은 범어 첫 글자 아a자를 상징하며 창조·출발·시작 등을 의미한다. 입을 다문 것은 범어 마지막 글자 훔hum자를 상징하며, 끝과 소멸을 의미한다‘. 아’와‘훔’을 합하면 원만구족을 상징하는 범어 옴om자가 된다. 그러므로 쌍사자형상은 완성을 의미한다.


석등의 활용

전래되는 여러 종류의 석등이 있더라도 석등의 이러한 특징을 중요시한다면 정형성을 찾기 위해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 우선적으로 높이 평가될것이며, 조형물의 예술적 완성도에 따라 다시 등급이 나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석사 석등은 정형성의 측면에서 높은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예술성으로 볼 때는 쌍사자석등의 생동감과 더불어 곡선미가 아름다운 고복형 석등들이 또 다 른 등급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에 들어서는 고복형 석등양식들이 모방되어 많이 조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문화재의 등급지정은 가치성에 영 향을 받을지 몰라도 문화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은 각 시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에 달려있다. 어둠을 밝히는 등 하나에도 벽사와 지혜를 희구했던 철학과 예술성을 가미한 선조의 지혜를, 현대의 기술로 작고 정밀하게 만들어 우리의 침실과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석등으로 새롭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글·사진·한정갑『한지유의 사찰문화재기행』저자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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