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봉에 들다
가야산의 기슭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장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신성한 땅이다. 이곳은 옛날에 제사장이 거주하던 곳이며, 가야사의 금탑이 있었던 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은 마치 천 년의 시간을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도청봉은 현재 많이 기억되지 않는 가야산의 명칭 중 하나로, 조선 시대에 이르러 그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가야산은 가야사, 금탑 등과 같이 다양한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지닌 명소로, 고대부터 많은 이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삼국시대 이전부터 제사장의 제례 공간으로 사용되며, 신성한 상징성을 가진 곳으로 여겨졌다.
인간과 하늘을 잇는 매개체로서의 당산은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이다. 가야산은 내포지역 주민들에게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가야봉, 백암봉, 원효봉, 연엽봉 등의 봉우리들은 모두 종교적 의미를 갖고 있다.
가야산의 석문봉과 그 아래 자리한 도청봉은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다. 중년에 이르러 이곳으로 돌아온 나는 매일 한두 차례 이 산을 오른다.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이곳이 둘째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안개가 뒤덮인 날 높다란 이 터는 땅 위에서 보면 아득하고, 하늘에서 보면 웅장하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나 이 터에 와 본 사람들이 하나 같이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곳이다.
가야산의 석문봉이 길게 마을쪽으로 흘러내린 도청봉의 끝자락 대웅전을 짓을 만 큼 넓은 대(臺) 중앙에 금탑이 서 있는 자리에서 보는 풍광은 가야산 최고의 경승이었다. 백제부터 고대인들의 제례공간이었고 이후 사찰이 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깝게는 가야동 온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는 가야산의 원효봉이 끝 나는 곳 명월봉과 청풍봉 사이로 나아가면 저 멀리 첩첩하고 겹겹한 금북정맥을 굽어볼 수 있어 몽환의 아련한 시선으로 파도치듯 밀려오는 산그리메를 조망할 수 있다.
너무도 활홀하고 아름다웠다. 카메라에 절대 다 담기지 않는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모습을 더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는 것 같다.
1845년, 한 미친 자의 어처구니없는 욕심으로 인해, 거대한 가야사의 금탑은 하루아침에 붕괴되어 무덤이 되었다.
오늘도 역사의 현장 도청봉에 들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석문봉 너머로 해가 진다.
무덤 앞에 펼쳐진 산그리메는 몽유도원도을 보는 듯하다. 무덤 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꿈속의 이상향을 보는 것 같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여운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역사의 현장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