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리(가동)

[스크랩] 중고재...이야기

phllilp7 2016. 8. 8. 12:05

중고제---국어사전

 ~ 주로 경기도, 충청도 지방에서 일어난 판소리 유파의 하나. 조선 시대의 명창 모흥갑(牟興甲)의 창법을 잇는 방식으로,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적 성격을 띤다. 첫소리를 평평하게 시작하여 중간을 높이고 끝을 다시 낮추어 끊는 것이 특징.

  신명나는 판소리~장은지 독자 (대구)

 판소리는 어떻게 분류 될까? 

  

/

 

 지역    장단 및 리듬  수식 및 기교  특성

 < 서편제 >

 

 섬진강 서쪽  길고 약간 끝을 흐림  수식과 기교가 많다  여성적이고 섬세함

  < 동편제 >

 

 섬진강 동쪽  짧고 끝맺음이 분명함      수식과 기교가 적다   남성적이고 씩씩함

 < 중고제 >

 

 충청도, 경기도  중간  중간  동편제에  더 가까움

  

 " 서산 충남 서산 중심의 판소리 유파 중고제 " ~ 내포 가야산 미륵세상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 유파.

 

[개설]

 중고제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음 판소리로서 경기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판소리를 일컫는다. 판소리는 지역적으로 구분하는데, 잘 알려져 있는 동편제와 서편제는 전라도 섬진강을 중심으로 나뉜다. 강의 동쪽의 판소리는 동편제로 칭하고, 서쪽의 판소리는 서편제라고 칭한다. 중고제 판소리는 충청남도 논산, 강경을 위시로 한 금강 유역권과 서산, 해미의 내포 문화권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서산 지역에서는 심정순(沈正淳) 이후 심화영(沈嬅英)에 이르기까지 심씨 일가에서 중고제 판소리를 전승하였다. 이외에도 서산에서는 중고제 판소리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중고제 판소리 서산보존회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다.

 

[내용]

중고제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라는 큰 유파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많은 명창을 배출했다. 전기 8명창의 한 명인 방만춘(方萬春)을 비롯해서 후기 5명창 중 이동백과 김창룡 2명이 중고제 명창일 정도로 융성했었다. 특히 이동백은 고종의 총애를 받아 당상관(堂上官)인 정삼품(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의 벼슬을 제수받기까지 하였다. 그 외에도 고수관(高壽寬), 심정순 등의 중고제 명창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중고제 판소리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후기 판소리로 구분되는 구한말 시대이다. 이때에는 이동백을 비롯해 많은 명창이 배출되었고,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중고제 판소리는 충청도와 경기도 남부 지역에서 발전했지만 그중에서도 내포 지방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서산을 중심으로 중고제 판소리가 발전하였는데, 이는 중고제 명창들의 출생과도 관련이 깊다. 중고제 명창 중 고수관과 방만춘이 서산 해미에서 출생했고 심정순, 심화영 등 심씨 일가 역시 서산 출신 집안이었다. 원래 심씨 일가는 예술인 집안이었다. 심정순 본인도 판소리뿐만 아니라 가야금에 능통했었고, 가족 대부분이 소리뿐만 아니라 악기에도 능통한 예인으로 서산의 문화 예술의 한 축이 되는 집안이었다.

심정순의 자녀인 심화영도 이에 영향을 받아 중고제 판소리를 전수받은 것은 물론 승무를 비롯한 여러 예술에 능통한 예인이었다. 심화영은 죽기 전까지 서산에서 거주하며 승무와 중고제 판소리의 전수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서산 지역 문화 예술의 핵심이었다.

 

[의의]

고종 등 왕실을 비롯해서 양반 상류층에 큰 사랑을 받던 중고제 판소리는 현재에 이르면서 점차 판소리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고제 판소리는 여전히 동편제, 서편제 등과 함께 판소리 유파의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중고제 판소리는 동편제나 서편제와는 다른 판소리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중고제 판소리는 양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가곡풍의 판소리라는 특징과 동편제 이전의 옛 소리가 살아남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과 그 중요도 때문에 중고제 판소리는 재평가되고 있다. 특히 현재도 중고제 판소리가 전승되고 있는 서산을 중심으로 내포 지방의 중고제가 주목되고 있고, 현재 각종 학술회의 등을 통하여 그 위상을 재정립해 가는 과정에 있다. 최근에 중고제 판소리의 본거지는 서산임을 알리기 위해 중고제 판소리 서산보존회를 구성하여 이를 보존·전승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충청도 중고제 소리를 아시나요?”  김문창 기자  moonlh@hanmail.net

‘국악악단 ‘풍류’ 제10회 상설공연’

2011년 12월 19일 (월) 11:35:25김문창 기자  moonlh@hanmail.net
 
국악악단 ‘풍류’ 제10회 상설공연이 12월29일 19시 충남대 인문대학 문원강당에서 최초로 ‘충청도 중고제 소리여행’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어서 음악인들과 대전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중고제 소리공연은 거의 소멸된 중고제 판소리를 비롯한 충청도 가무악을 최초로 복원하고, 부흥하기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펼치는 공연이다.

국악악단 ‘풍류’와 ‘국악 음반 박물관’이 함께 마련하는 이번 중고제 음악회에서는 한성준 피리시나위가 조성환 국악극단 풍류 대표의 연주로 최초로 복원되어 초연된다.

또 이번 음악회에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여자명창이라는 평가를 받은 장문희 명창이 초청되어 판소리를 하게 되는데 장 명창의 선조인 이기중, 이일주 명창 등이 부여 등 충청도에서 활약한 중고제 가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또한 충청도 중고제의 마지막 맥을 잇고 있는 서산의 이애리ㆍ이은우의 전통춤ㆍ가야금병창ㆍ판소리와 함께 공주의 신성수씨가 중고제 단가 호서가를 선보여 이 행사를 빛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송서 예능보유자 정규헌 명인이 출연하여 판소리의 모태격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 낭독 공연을 선사하게 된다.

충청도 가무악과 충청도에서 활동하는 서화 예술가가 만나는 퍼포먼스도 이번 행사에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번 음악회에는 국악음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동백, 김창룡, 심정순, 방응규, 백점봉, 한성준과 같은 옛 충청도 중고제 관련 명인명창들의 귀중한 사진들로 무대가 꾸며지게 된다.

그리고 국악음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동백, 김창룡, 심정순, 방진관, 백점봉 명창의 중고제 판소리 옛 음원 감상 시간도 준비되어 있으며 전반적인 해설은 국악음반박물관 관장이자 국악방송 MC로 활동 중인 노재명이 맡아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게 된다.

노재명 국악음반 박물관 관장은 “충청도 지역이 현재는 국악의 불모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예로부터 국악 가무악이 전국에서 가장 성행했던 곳”이라며 “중고제 판소리, 가야금병창, 내포제 시조, 웃다리 풍물, 남사당놀이, 금산농악, 청주농악, 중원 마수리 농요, 영동 설계리 농요, 한국 3대 악성 중 1명인 난계 박연의 고향인 영동, 고수관이나 심정순 같은 명창이 태어나고 활약한 서산, 한국 전통춤의 대명사 한성준의 고향 홍성, 대표적인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동진 명창의 고향은 공주라는 점 등이 충청도의 뿌리 깊은 국악 문화 역사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노관장은 “1824년 ‘갑신완문’ 기록에 의하면 팔도 예인(국악인)을 총괄하는 '도대방' 역할자로 충청도 예인(국악인) 중에서 선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밝히고 “초기 판소리 명창들 상당수가 충청도 태생이다. 특히 충남서천은 근대 판소리 5대 명창 중 2명(이동백, 김창룡)이 탄생하였고 판소리가 서천의 김성옥-김정근-김창룡-김세준-김차돈 가문에서 거의 이루어지다 싶이 했다는 기록(조선창극사)이 있으니 판소리의 발생지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노재명관장은 “전라도 구례 동편제 소리축제가 있고 전라도 보성 서편제 소리축제가 있는데 충청도에는 아직 이 지역의 중고제 판소리에 관한 축제가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따라서 “이번 공연을 통해 지역의 무관심을 극복하고 충청도 서천 중고제 판소리 명가문 김성옥-김정근-김창룡-김세준의 마지막 명창 김차돈이 일본에 생존해 있고 서산의 중고제 명가문 심팔록-심정순-심화영의 후손 이애리가 현재 국악 가무악 활동을 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충청도 중고제 복원, 활성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성환 국악 악단 풍류 대표는 “국악악단 ‘풍류’와 ‘국악 음반 박물관’은 앞으로 충청도 고유의 음악 발굴과 부흥을 위한 다양한 연구, 공연, 기획 활동을 통해 유럽 등 세계 음악시장에 충청도 민속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세계의 대표적인 음악 브랜드 장르로 육성할 계획이다”고 공연을 기획의도를 밝혔다. .

노재명관장이 운영하는 ‘국악 음반 박물관’은 26년간 63,000점의 국악 자료를 수집했고(희귀 국악 음반 14,000여점) 21년간 자료 정리를 하였고 10년간 사립으로 박물관을 운영하며 국악 자료의 메카 역할을 해왔다. 1896~2011년 115년간의 국악 음반 95%를 국악음반박물관이 수집 관리ㆍDB를 구축하고 국악 음반 사전 7권(장르별 총 3000여쪽)을 완간한 것은 국악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결실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국악악단 ‘풍류’는 2009년 2월 창단했으며 매월 상설공연 유성 노은동 풍류소극장 ‘풍류마실'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또, 2009년 9월 전주세계소리축제 무대공연 '젊은시선' , 2010년12월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 '2010 송년음악회', -2010년12월 서울롯데호텔 아랍에미리트 내셔널데이 축하공연, -2011년 4월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 ‘국악과 째즈의 만남’, -2011년 5월 대한민국 청소년박람회 개막공연- 대전 DCC, -2011년 7월 국립부여박물관 초청 공연, -2011년 8월 한국 가발 헤어 패션쇼 서울 강남코엑스3층 특별무대 등의 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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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마지막 중고제, 심수봉 <최충식 논설위원> 
<기사입력 : 2009-11-26 10:07>
 
“최충식이라고 합니다!” 처갓집 처음 가서 관등성명을 댔더니 “안강최”요, “강뿔따구 최고집”이라며 고집 쪽으로 일가를 이루겠구나 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로든 최씨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난다는 말을 듣고 산다. 도리 없다. 최영 장군의 원형적 인물이 내 안에 기거한다는 ‘성급화의 오류’를 담담히 수용하는 수밖에.

 
그런 유추법에서 보면 심씨 성을 가진 규수는 효심이 극진해야 한다. 한자 심(沈)은 ‘잠길 침’, ‘가라앉을 침’. 물 이미지와 관련이 깊다. 최씨가 최영 장군으로 소급되는 것처럼 심청전의 심씨가 영원한 현재로 현현한다. 과학적이진 않지만 이 심리 패턴을 따라가면 가수 심수봉과 맞닿는다. 단조곡 「그때 그 사람」의 심수봉. 시바스 리갈을 마시며 심수봉류 트로트를 듣다 돌아간 대통령의 참극을 빼고 그녀를 말할 수 없다. ‘날지도 못하는 새야. 무엇을 보았니….’

▶판소리의 음악적 계보를 ‘제(制)’라 칭한다. 전라도 동북지역 운봉, 구례, 순창 등지에 동편제(東便制)가, 전라도 서남지역 광주, 보성 등지에 서편제(西便制)가 전승된다. 중고제(中高制)는 충청과 경기 남부의 소리제이지만 여세가 미약하다. 중고제의 마지막 맥을 잇는 지킴이가 심화영이다.

심화영은 심수봉의 고모다. 충남도 무형문화재(승무)인 심화영은 소리꾼 심정순의 딸. 심수봉의 증조부 심팔로는 피리 명인, 아버지 심재덕은 민요 채집가였다. 큰아버지 심상건은 가야금 명인, 작은아버지 심사건은 인간문화재 소리꾼이다. 심화영의 오빠가 태안에서 꾸리던 식당은 명창 이동백과 김창룡의 중고제 산실이었다. 중고제는 철종 때 한송학이 창시하고 바로 김창룡 등이 계승한 유파였다.

 
▶서산의 중고제 가문에서 태어난 심민경. ‘수봉(守峰)’은 “지족선사가 황진이를 안아 도를 그르쳤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그녀를 홀연 껴안던 스님의 작명이다. 살다보면 사면초가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림자(shadow)’라 부르는 제3의 대상이 등장한다. 개천에 빠진 심봉사 앞 봉은사 주지도, 심수봉에겐 속리산 자락 그 스님도 그림자일 수 있다.

▶세습 예인의 종가, 그 핏줄내림에서 나온 재현일까. 실마리일까. 심수봉은 반음(半音)을 즐겨 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연주자들이 딱 질색하는 C샤프 마이너다. 그녀 목소리에 최상의 음역인걸 어쩌랴. 중고제도 반음이 많고 소리끝이 높다. 희비의 강변들, 부침의 여물목을 지난 그녀의 꺾어짐을 슬플 때 들으면 관세음이 십구 응신(應身)으로 화하고 억천 분신(分身)으로 나타나는 듯 들린다.

▶턱없이 멀리도 돌아왔다. 인터넷을 열자마자 ‘오드리 헵번’의 포스팅이 눈에 들어온다. 조회 수 9만. ‘음원 저작권 위반, 70만에 합의했습니다’란 글이다. (저작권 합의금은 동영상 300만원, 카페 150만원, 개인홈피 100만원 정도라 한다.) 혹시? 수십 명의 오드리 중 내 카페에 열심히 댓글을 달던 그 오드리 아닌가! 몇 해 전, 댓글을 무시한 죄목으로 그녀에게 사이버공간에서 ‘절교’당했었다.

불법 복제 순위인 ‘길보드 차트’에 심수봉이 올라 있다. 역설적이지만 인기가 ‘대중적’이란 뜻이다. 아픈 고난과 고비를 겪은 여자만이 부를 수 있는 심수봉 노래는 진통·진정 효과가 있다. 심수봉의 심수봉스러움은 사람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깊은 길을 아는 데서 나온다.

 

 /최충식 논설위원  < 지면 게재일자 : 2009-03-19     면번호 : 21면 > 

중고제의 끝자락, 거장 이동백 ---~이야기가있는여행 여행 / 맛집

울아들도연 | 조회 11 |추천 0 | 2011.10.30. 17:39

 

근대 판소리의 신화, 이동백

서천 시내에서 4번 지방도를 타고 부여 방면으로 야트막한 여우고개를 넘으면 바로 종천면 도만리다. 희이산이 억센 팔로 아늑하게 동네를 감싸 안고, 그 뻗친 기운이 한가운데 모인 명당자리이다. 1866년 신미양요가 나던 해 이 마을에서 명창 이동백이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여러 정황으로 보면 경기도 일대에서 대대로 세습해 온 재인 집안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집안 소리를 익힌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로 이웃 고을 장항에 살던 김정근 명창에게 몇 달 소리를 배웠고, 김세종 명창을 찾아가 잠시 견문한 적도 있다.

 

견문이란 대가나 선배들의 소리를 듣고 그 요체를 깨달아 자신의 소리로 구현해 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형식보다는 내용이요, 정신을 깨달으면 기술은 절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득음도 득도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목 수련이 아니라 음악적 요체의 터득을 일컫는 말이다. 이동백은 거의 희이산 토굴 속에서 독공으로 소리 공부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동백의 판소이에는 고제와 신제가 공존한다. 이동백을 송만갑과 함께 오명창의 첫머리에 놓는 것은 판소리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암시한다. 새로운 땅을 개척하지 않고 위대한 예술이 되는 법은 없다.

이동백의 소리는 매우 독특하다. 스승 김정근의 아들 김창룡의 소리와도 다르고, 기세종 제와도 다르다. 이동백 <춘향가> 창본을 보면 다른 바디(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한 바탕 소리)와는 뚜렷한 차이가 난다. 한마디로 매우 독특하면서도 뼈대 있는 바디이다. 그의 독특한 호령 성음과 귀곡성은 청중을 압도하는 힘을 지녔고, 화려하고 절묘한 묘사음으로 새타령을 부를 땐 누구든 탄복을 금치 못했다.

이동백은 20세기 전반 최고의 호사를 누린 명창이다. 선풍도골의 풍채, 만인의 신금을 울린 청신 미려한 성음, 웅혼 호방한 창법, 예술가로서의 자부심 등 판소리의 영화를 한 몸에 지녔던 명창이다. 그가 끝이었다. 이동백 이후에는 그만한 풍채도, 그만한 재질도, 그만한 고력도, 그만한 기개도 더이상 판소리 판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그만한 호사를 누린 명창도 없었다. 1950년 이동백의 타계와 함께 영웅의 시대는 가고 소리판을 필부범부의 경연장이 되었다.

도만리의 이동백 생가는 주인이 몇 번 바뀌고, 집도 여러 차례 허물고 다시 지어 지난해에는 번뜻한 양옥이 들어섰다. 주인은 이동백의 기념비 때문에 주차가 불편하다고 불만이다. 어느 핸가 관청에서 남의 마당에 비만 덩그러니 세워두고 소식이 없단다.

 

<명창 이동백>

그 아름답던 동백정 백사장이 사라진들 누가 아쉬워하며, 이동백의 생가 터에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슬바람 불 제, 뉘 한 잔 술로 슬퍼하랴. 진정 우리의 마음속엔 이 위대한 예술가에게 내어줄 한 평의 땅도 없는 것인가.

 

장항, 전라도로 넘는 나루, 근대로 가는 나루

종천면 도만리에서 4번지방도를 타고 서천 시내를 지나 남쪽으로 14킬로미터를 가면 장항읍 성주리 빗그뫼 마을이 있다. <조선창극사>에서 횡산리(橫山里)라고 번역해 놓은 김창룡 명창의 출생지이다. 장항초등학교를 끼고 돌아가면 평범한 도시 변두리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금강이 서해와 만나는 포구. 장항은 댐이 막히기 전에는 충정 내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호남 군산으로 건너가는 나루였다. 전망산 꼭대기에서 100m 높이를 자랑하는 장항제련소 굴뚝은 한때 우리나라 비철금속 공업의 상징이기도 했다.

금강이 충청 호남 내류의 대동맥이었던 만큼 이 강은 판소리의 요람이 되기도 했다. 그 끝자락에 명창 김창룡(1872~1943)이 있었다. 그의 부친 김정근은 새로운 판소리 시장을 찾아 강경에서 이곳 빗그뫼로 이주해 왔다.
근대 판소리 5명창 가운데 김창룡만큼 특이하게 소리를 하는 명창도 없다. 김창룡은 대표적인 청구성을 지닌 명창이다. 징청하고 힘있고 여유롭고 늠름한 그의 성음은 도도한 흐름, 금강을 닮았다. 담백한 성음으로 평탄하고 한가하게, 얼음에 박 밀듯이 읊어가는 고풍스런 판소리는 누가 들어도 특이하게 들린다. 혹자는 만장폭포가 없고, 기암괴석이 보이잖아 싱겁다 할지 모르겠으나, 만경창파가 어찌 천봉만학만 못한다 하랴. 출렁이는 물결, 뛰어노는 어룡, 명랑한 달빛, 도도한 취흥을 강 아니면 어디서 얻으리.

명창 김창룡
<명창 김창룡>


 두보(杜甫)를 일러 시사(詩史)라 한다. 한 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활동사진처럼 시로 엮었기에 후세의 평자들은 그를 두고 시를 쓴 역사, 시사라 했다. 김창룡은 창사(唱史)이다. 진양조를 창안한 조부, 시조와 음률에 한숙(嫺熟)했던 부친, 그리고 중고제의 판을 막은 김창룡, 아들 명고수 김세준. 이 가문의 소리 속에는 판소리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창룡은 많은 유성기 음반을 취입하면서 권삼득 제(설렁제) ‘제비가’, 고수관 제(추천목) ‘사랑가’, 염계달 제(경드름) ‘돈타령’, 박유전 제(강산제) ‘화초가’, 송광록 제 ‘소상팔경’ 등 옛날 판소리 명창들의 더늠을 흉내 내면서 소리를 하였다.

 

“권삼득 권 새원 제였다. 제비 몰러 나간다…”

“송흥록 씨 송 선달 귀곡성이었다. 바람은 우루루루루루 구진 비는 퍼붓는디…”

“강산 박유전 씨 박 선생 제였다. 여보 되련님, 나를 데려가오…”

“광록 씨 송 선생 소상팔경 어부가였다. 범피중유 높이 떠서 망망헌 창해유요…”

-김창룡의 유성기 음반 중에서

 

이렇게 누구의 곡조라고 소개하고 소리하는 것을 어떤 명창제, 또는 누구더늠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곧 판소리 역사를 밝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이 명창제 더늠에서부터 우리 음악에도 비로소 작곡가의 이름이 붙은 노래를 듣게 되었다. 판소리는 집단의 창작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들어 있는 이런 더늠을 통해 어떤 명창의 음악적 성향과 시대적 특징과 같은 판소리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다. 김창룡의 판소리 속에는 금강 가에서 일어났던 150년의 판소리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전차로 그의 소리를 두고 창사(唱史)라 하는 것이다. 조선에 음악사가 있다면 이는 곧 이 집안의 소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35년 콜럼비아에서 발매한 창극 춘향전 전집의 가사지
1935년 콜럼비아에서 발매한 창극 <춘향전 전집>의 가사지.
김창룡, 이화중선,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고수로 이름났던 한성준 등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금강 가에서

서해안을 따라 고속간산(高速看山)으로 내포 땅을 지나면서 충청 지역의 판소리사를 더듬고 이제 금강 가에 섰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피도 흘러서 하늘로 가고

가랑잎도 흘러서 하늘로 간다.

-문정희 <새떼> 중에서

 

하늘로 가는 것이 어디 가랑잎뿐이랴. 소리도 흘러서 하늘로 가고, 숱한 가객도 흘러서 하늘로 갔다.

금강에 배를 띄워 풍월을 가득 싣고 범범증류 내겨가면 갈매기가 여전히 날 것이다. 취흥 또한 도도한데, 대명창의 자리는 이제 없다. 지금의 금강 포구의 모습은 제련소 굴뚝에서 사라진 연기처럼, 영혼과 예술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중고제는 판소리의 역사와 함께 사라졌지만, 현대 판소리의 저 깊은 지층 아래 여전히 퇴색층으로 남아 있다.

 

* 글.사진제공 : 지방자치단체, DMZ관광청, 인천관광공사

 ***님의 블로그 글  ~ 안녕? 김형년 베드로!!

 

  어제는 이병근 샘의 초대로 국립극장에 가서 생전 처음 중고제 판소리라는 걸 들었어. 판소리 하면 전라도 지방의 동편제, 서편제만 있는 줄 알았더니, 경기도와 충청지방에서 불리워지던 중고제 판소리라는 게 있었다는 거야.

 

  중고제는 일제시대인 1930-40년대까지 소리꾼 이동백을 통하여 불리워지다가 사라져 버린 판소리의 한 유파로 중앙대학에서 창극을 전공한 소리꾼 박성환씨가 그 맥을 이어나가 보려고 시도한 첫공연이었어. 국립극장 중에 가장 작은 공간인 별오름극장은 창극만이 아니라 마임이나 1인극 등 소규모 연극을 하면 아주 좋을 공간이더라.

 

  중고제 판소리는 경기도와 충청지방의 양반 문화에 맞게 판소리가 좀더 표현이 점잖아지고 감정이 절제되어 세련되고 우아하게 다듬어진 대신 구성지고 찰지며 사람의 마음을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없어서 점점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어.

 

  고려대 유영대 교수의 해설을 듣고 이어서 박성환씨가 40분 가까이 적벽가 중에 현덕이 제갈공명을 찾아 '삼고초려' 하는 부분을 부르는데, 최선을 다해 부르긴 하지만 내용도 잘 모르겠고 별 재미가 없다 싶게 밋밋한 거야. 나중에 앵콜로 동편제 한 부분을 부르는데, 그때는 진짜 판소리의 맛이 나는게 두 가지 판소리의 맛이 완연 다르다는 걸 알겠더라구.

 

  그래도 99% 전라도 판소리 판에서 맥이 끊긴 중고제 판소리의 맥을 이어보겠다고 공부를 하고 발표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단 게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 참 기품있고 아름다워 보였어. 거문고 산조를 찬조출연한 젊은이도 참 보기 좋았고 북을 치며 추임새를 넣어 분위기를 띄우는 고수까지 대중들이 외면하는 국악의 맥을 계속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게 하느님의 신비처럼 느껴지더라.

 

  명색이 국어선생인데 국악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부끄러울 때가 많아서 사물놀이나 민요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볼 기회가 오면 좋겠는데 내가 너무 소극적인지 영 기회가 잘 안 오네. 감기 기운이 들어오는지 춤고 피곤하고 이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럼 안녕.

출처 : 정혜정 국악 연구원
글쓴이 : 꽃님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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