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이고 정치인 운양김윤식(1835(헌종1)1922)은 충청도 면천에 유배 생활을 하며 동학과 가야산이야기를 면양행견일기에 남긴다.
당시 고종의 원찰인 보덕사에는 어필각(御筆閣), 칠성각(七星閣)이 있다고 기록하고 , 남연군의 명덕사 제각이 잘 보존되었다고 기록한다.
* 보덕사의 창건 연대는 문화재청과 예산군(문화원) 모두 다르게 연대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오류를 각종 포털에서는 인용한다.
오류와 잘못된 안내 등 기회가 되면 시정되어야겠다.
정보를 정리하여 다시 올리지요.
1893년 4월 6일 丁亥. 아침에 비가오더니 저녁에 개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 비가 내렸다. 주인과 손님이 걱정하며 앉아 있었는데 오후에 날이 개었다.
마침내 석운(石雲), 초하(蕉下), 도은(陶隱), 이생(李生) 태현(泰賢), 문생(文生) 추(錘), 월해(月海) 스님, 김일관(金日觀), 시동(詩童) 장성록(張成祿), 이우린(李又麟), 최생(崔生) 시철(時澈)과 함께 가야동(伽倻洞)으로 동행했다. 원당곡(元堂谷)을 경유하여 다시 쌍룡폭포(雙龍瀑布)를 보았다. 비온 뒤라 물소리가 매우 커 전에 비해 더 좋았다. 이로부터 가야동에 도착하니 산길이 구불구불하고 곳곳마다 물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했다. 남연군(南延君)의 묘소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가야사(伽倻寺)의 유적지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사방을 에워싼 듯 멀리서 바라보니 맑고 깨끗했다. 옛부터 이 산은 왕기(王氣)가 있다고 일컬었는데 과연 이곳으로 묘소를 이장한 뒤 10여 년 뒤에 성인(聖人)이 탄생하고 이어서 용흥[龍興, 임금]의 경사가 있었으니, 지관(地官)들이 풍수(風水)를 떠드는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 산을 가꾸고 소나무를 기르고 각(閣)을 짓고 비(碑)세우는 등의 일들이 능소(陵所)보다 덜하지 않았다. 보덕사(報德寺)는 동북쪽 기슭에 있었는데 역시 갑자년 이후로 나라에서 세운 것이다. 밤에 절에서 묵었다. 주지 각률(覺律)은 법호가 한송(漢松)으로 해월(月海)의 스승으로 일전에 경산(京山)으로 갔다. 승려는 30여 명이고, 불당(佛堂)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외에 새로 지은 어필각(御筆閣), 칠성각(七星閣)이 있고, 또 여승 2명이 그 곁에 살고 있었다. 저녁에 황석정(黃石汀)이 쫓아왔는데 약속했던 사람이다. 윤성빈(尹聖賓)이 갔다. 현재 집이 교동(橋洞)에 있으니 이곳과는 10리(里)쯤 되는 가까운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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