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구곡

[스크랩] 연악구곡(淵岳九曲)

phllilp7 2012. 10. 24. 07:00

 

연악구곡(淵九曲)

 

 

연악구곡은 남계 강응철의 남계집(南溪集)    연악구곡기에 전하는것으로

상주고등학교 한문교사이며 문화재위원으로 계신 외삼 김정찬 선생께서 발굴하여 소개하였다

외삼님은 이곳 본 카페에서도 좋은글을 게제하여주신분이다.

 

 

- 질구내

마을 뒷산인 갑장산 계곡에서 여름철이면 물이 많이 흐르는데 그 개천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을이 개천가에 형성되어 마을이름을 질구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연악구곡기(淵嶽九曲記)
연악서원 주변의 경승지를 명명한 것으로 남계(南溪) 강응철(康應哲)이

지천서당 앞의 계류를 따라 각각의 독특한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세월이 오래되어 계류와 지형이 변하여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 이름들을 보면

1곡 탁영담(濯纓潭),

2곡 사군대(使君臺),

3곡 풍암(楓岩),

4곡 영귀정(詠歸亭),

5곡 동암(東岩),

6곡 추유암(秋遊巖),

7곡 남암(南岩),

8곡 별암(鼈岩),

9곡 용추(龍湫)이다.

 

 

 

 

 

 

 

 

 

 

연악서원(淵嶽書院)

상주시 지천동 628
상주시 지천동과 낙동면 비룡리 사이에 있는 갑장산은 예전에는 연악(淵嶽)으로 더 알려진 산이다.

 고스락 근처에 구룡연(九龍淵)이라는 옹달샘이 있어

옛날부터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는 유래가 있어 ‘연악’이라 불렀던 것이다.

낙동강 줄기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는 이 산은

머리 부분에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있고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바위 세 개가 뾰족한 붓처럼 뭉쳐 서 있는 문필봉은

그 영기로 인해 상주에서 과거에 장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하며

장원봉이란 별칭도 있다.

상주 지역의 교육을 위하여 경치가 뛰어난 곳에 18개의 서당을 세워,

처음 이름을 지천서당(智川書堂)이라 하였다.

1702년 박언성(朴彦誠), 김언건(金彦健), 강응철(康應哲) 세분을 지천서당에 배향하고

서원으로 승격되며 이름을 연악서원으로 하였다.

1725년 감영의 실수로 훼철령이 내려졌으나,

강만정(康萬禎) 등의 상소로 이듬해에 영조의 연악서원 훼철을 재고하라는 윤허를 받아

 훼철이 철훼되며, 김각(金覺), 조광벽(趙光璧), 강용량(康用良) 세 분을 추배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상주 사림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1987년에 묘우를 새롭게 세우며 서원을 복원하였다

 

 

 

- 강응철(康應哲)
1562(명종 17) ~ 1635(인조 13).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자는 명보(明甫)이며, 호는 남계(南溪)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 하였으며, 5세에 강산풍월(江山風月)이라는 큰 글자를 써서 주위를 놀라게 하였으며,

현액으로 만들어 지금도 상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노수신의 문하이며, 찰방에 이르렀으나,

광해군의 폭정에 분개하여 은퇴하여 독서로 여생을 보내었다.

임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웠으며,

문장과 학문은 당대 유림에서 상산사호가(商山四皓家)로 칭하였다.

 

 

 

연악문회록(淵嶽文會錄)
1622년(광해 14) 임술년 5월 25일 연악서원에서 시회를 개최하였으며, 상주 목사 조찬한(趙纘韓)을 비롯하여 정경세(鄭經世), 이전(李?), 이준(李埈), 김혜(金惠) 등 15인이 참여한 시집이다.

 

 

 

 

 

 

 

 

 

 

 

 

 

 

 

 

 

 

 

 

 

 

 

 

 

 

 

 

 

 

 

 

 

 

 

 

 

 

 

 

 

 

 

 

 

 

 

 

 

 

 

 

 

 

 

 

 

 

 

 

출처 : 십승지와구곡을찾아
글쓴이 : 주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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