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사지 석물
내포 가야산은 먼 바다에서 내륙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내륙 깊숙이 연결되며 충남 예산과 서산 그리고 당진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있으며 그 중심에는 가야사와 상가리 미륵불이 있다.
가야산의 가야사와 보원사는 당진에서 중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가야산과 불교의 역사는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382년 침류왕은 진나라로부터 온 인도 호승 마라난타를 궁중으로 맞아 예를 갖춰 공경했다.
다음해 한산에 절을 세웠는데, 도승이 10인에 이르렀다고 한다.
백제 장인들은 중국의 불교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하여 바위에 부처님을 모셨다.
백제의 성왕은 결정적으로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는 업적을 남겼다.
일본에 불상 한구와 경전들을 전했다.
당시 도심, 담혜등 승려16명과 기술자(불상, 절, 기와 제조 등)가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기술을 전해주고, 글자까지 전파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다시 중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백제인 들이 정성을 모아 가야산에 지은 절이 바로 가야사와 보원사 입니다.
529년(성왕 4)에 인도에 다녀와서 온 겸익도 한때 가야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던 두 사찰은 지금 황량한 폐사지로만 남아 있다.
가야산에서 불교문화가 번성하던 시기인 조선중기 이전까지 보원사와 가야사는 비슷한 규모의 사찰로 큰스님(법인국사 탄문(彈文))들이 보원사 혹은 가야사에서 수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내포가야사에서 수계 받은 스님 진철국사 이엄(利嚴, 866~932)12세 때 가야산 갑사 (伽倻山 岬寺 : 당시 가야사와 교류함, 보원사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의 덕량(德良)을 따라 출가하였고,886년(정강왕1년) 도견(道堅)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가야사와 보원사는 이웃한 사찰로 당시 교류가 많았던 사찰이다.
가야사지와 보원사지는 현재 발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