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구곡

[스크랩] 화양구곡(華陽九曲)을 찾아서~~

phllilp7 2012. 10. 2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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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 (華陽九曲)

 

화양구곡은 답사계획이 구곡 답사 첫번째로 계획되어있었지만

차일 피일 미루다 보니 잊혀져 가는구곡이 되었다.

그리된 이유는 이곳 화양동은 우암의 본거지라 할정도로  송시열의 고향이나 다름없는곳이다

조선 왕조실록에 가장 많이 나오는 신하가 우암이다

그리 탐탐찬은 시각으로보면 우암은 내게는 그리 올바른 선비라 느껴지지않는다.

모든걸 떠나서 그냥 구곡(九曲)답사라는 명제하에 화양동으로 들어간다

 

화양동

화음동은 없을까 있을까요?

화음동도 있습니다.

강원도  화천에 가면  곡운 김수증이 은거하면서 세운 화음동 정사에 곡운 구곡이 있다

그의 조카들과 함께 곡운구곡가를 짖고 조세걸이 그린 곡운 구곡도가 현존하고있다

그러면 곡운 김수증과 우암 송시열은 무슨연관이 있을까?

연관이 있다.

같은 계열이다 동생 김수항이 송시열과 뜻을 같이 하다 함께 귀양길을 떠난다

곡운의 가계는 3대가 대제학을 한 가문이고 설악산 영시암을 지은 삼연 김창흡이 김수항의 아들이다.

이것으로 각설하고   ....

 

 

화양동으로 들어갑니다

첫번째 부터 별 시답잔은 표지석이 보인다

아홉골짜기 ?구곡의 곡이 계곡이 아니고 굽이를 말한다

물줄기가 한구비 돌아 또 돌아 아홉 구비를 돌아나가는 그런 모양을 말한다

 

 

제1곡 경천벽(擎天壁)

경천벽은 화양동 주차장 가기전에 있다.

경천이라 하늘을 떠 받든다.?

아마도 하늘은 대명의 천자 마지막 황제를 일컫는말이련가?

아니면 하늘을 떠받는그런 모습이라서일까?

 

 

  一曲漣漪可泛船      일곡이라, 물결 잔잔하여 배 띄울 만하고

  擎天危壁逈臨川      하늘을 떠받든 우뚝한 절벽 개울가에 높이 서 있네.

  虹橋北望皇祠近      홍교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황제 모신 사당이 가까운데

  松檜森森鎖翠烟      소나무 회나무 자욱이 푸른 안개에 감싸여 있네

  

  - 권진응 -

 

 

 

 

 

 

 

제 2 곡  운영담(雲影潭)

 

운영담은 말그데로 구름이 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멋진 절경이고

운영담이라는 각자가 건너편에서도 선명하게 물위에 들어난다

아마도 무릉도원이라해도 무방할듯 빼어난 절경이다.

 

 

 

    二曲澄潭抱碧峰      이곡이라, 맑은 못 푸른 봉우리 감싸 안고  

    天雲終古倒寒容      하늘의 구름 시원스레 자태 언제나 거꾸로 비치네.

  高山漠漠靈源秘      높은 산은 막막하고 영험한 발원지는 숨겨져 있는데

  流水桃花渺幾重      흐르는 물결에 복숭아꽃 아득히 흘러가네

 

    - 권진응 -

 

 

 

 

 

화양서원

 

 

화양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가장먼저 철퇴를 맞은 곳이기도 하다

서원의 폐단이 가장 심각했던 그런곳이다.

우암사단의 폐단이 그만큼 심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원 맨 후원에 만동묘가 있다.

만동묘 사건등 어릴적 국사 책에도 나오는 그곳이 화양서원이다.

만동은 만절필동에서따온말이다.

 

 

 

 

제3곡  읍궁암(泣弓巖)

 

읍궁암은 각자가 없다

송시열이 이곳에 머물다 북벌을 주창하다 돌아가신 효종을 위하여 엎드려 통곡하던 장소라 한다 

우리가 배운 효종의 북벌 계획에 송시열이 모든걸 기획하고 의견을 제시한것으로 배웠지만 실상은 

계획만 세웠지 실행에 옮기지않는 세력이었다

백호 윤휴와는 사뭇다른 주장이었다  백호의 주장은 당장에 북벌을 하자는 계획을 세운반면 

우암은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여기서 우암의 이분법이 저로써는 못마땅하다  

 

 

 

 

 

  三曲巖如泛壑船      삼곡이라, 바위는 골짜기에 떠있는 배와 같은데

  貂裘泣血問何年      담비 갖옷 입고 피눈물 흘리기 몇 년인가?

  君民大計空遺廟      임금과 백성의 큰 계획 만동묘에 남아 있으니

  社宇聲聲聽可憐      만동묘에 통곡하는 소리 가련하네

    - 권진응 -

 

 

네모로 돌이 패인것으로 보아 아마도  한칸정도의  정자가 있었을 것 같다.

 

 

 

 

제4곡 금사담(金沙潭)

 

금사담과 암서제

 

 

 

암서재는 권상하가 지은 이름이다

암서재(巖棲齋)

          

                 

계변석애벽(溪邊石崖闢)   시냇가 바위 벼랑 펼쳐진 곳                

작실어기간(作室於其間)   그 사이에 집을 지었노라.

정좌심경훈(靜坐尋經訓)   조용히 앉아 경전의 가르침 찾아

분촌욕제반(分寸欲躋攀)   시간을 아껴 높은 곳에도 오르리라

                      - 권진응 -

 

 

 

암서재 입구 왼쪽 암벽에는 명나라 태조의 글씨로

 1913년에 새긴 ‘忠孝節義(충효절의)’와,

 ‘蒼梧雲斷 武夷山空(창오운단 무이산공)’이란 글씨가 힘차게 새겨져 있다.

 

 

암서제에서 내려다본 금사담

 

 

    四曲金沙映翠巖      사곡이라, 금사담에 푸른 절벽 비치고

                 巖松汀柳共毿毿      바위 소나무와 물가 버드나무가 빽빽이 어우러지네.

  書齋寂寞遺芬遠      서재는 적막하나 향기 오래 남아 있고

  秋月依然照碧潭      가을 달빛이 의연히 푸른 연못 비추네

 

   - 권진응 -

 

금사담의 각자

 

 

 

 

 

 

 

 

 

 

 

 

 
제5곡  첨성대(瞻星臺)

 

이바위에서 별을 관측했다  ??

내가 볼때는 별을 관측했던 첨성대가 아니라 바위가 첩첩으로 쌓여있었서가 아닐까

 

 

 

  五曲蒼崖高更深      오곡이라, 푸른 절벽 높고도 깊어

  霽雲和雨鎖空林      맑은 구름, 때맞춰 나리는 단비 공허한 숲속에 감도네.

  煌煌寶墨腥塵外      빛나고 빛나는 신종․의종 황제의 어필 속세 밖에 돋보여

  永激東民拱北心      오래도록 동쪽나라 백성 공북심(拱北心) 우러나게 하네

    

    - 권진응 -

 

 

 

첨성대 아래 바위절벽에 새겨진 각자들

 

 

명나라 의종의 글씨인 非禮不動(비례부동)

 민정중은 조선으로 돌아와 우암 송시열에게 1671년에 주었고,

우암은 그 글씨를 1674년 4월에 화양동에 새긴 것이다.

우암의 글씨인 大明天地 崇禎日月(대명천지 숭정일월)

 

 

여기서 우암은 명나라를 황제의 나라라 하여 명을 숭상하고

우리나라는 신하의 나라라고 할정도로 대명 황제를 존모하는 마음이 특출나다

만동묘에 우리 조상의 위폐가 모셔진곳이 아니다 명나라 황제의 위폐가 모셔진곳이다.

그래서 화양서원은 들어가고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만동묘 오르는 계단은 아주좁디좁게 만들어

발을 똑바로 디딛수없어  옆으로 게걸음으로 오르게 하였단다

 

명나라를 누가 멸하였나 ? 청나라가 멸했다

북벌을 계획한 효종임금의 뜻을 받들어 그리 섬기는 명나라를 멸한 청나라를 정벌하자는데 실행은 뒷전이었으니

싸워 보지도 않고 명나라를 멸한 청이니 우리가 되겠나 하는 그런 심정이었을터 

그냥 조용히 정권이나 유지하자는 그런 심정이었을까 ? 

 

 

 

 

 

 

제6곡  능운대(凌雲臺)

 

바위가 구름을 찌를듯하여 붙여진  능운대

관리가 되는지 앞쪽으로는 잡풀이 우거지고

 

 

 

능운대 옆에있는 절로 이름이 이뻐서 

구름에 물든절이라~~~

 

 

 

 

 

 

 

六曲凌雲又一灣      육곡이라, 능운대는 또 하나의 물구비

水門烟雨暖常關      수문에 항상 뿌연 안개비 서려있네.

自崖高揖干霄氣      언덕으로부터 하늘을 범하는 기운 높이 모였으니

仁者巖巖智者閑      어진 자는 높고 높으며 지혜로운 자는 한가하네

   - 송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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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곡  와룡암(臥龍巖)

        와룡암은 말그대로 용이 누워있는 모습의 바위이다.

 

  

七曲龍巖枕石灘      칠곡이라, 용 바위가 바위 여울에 잠겨 있는데

一方魚水臥雲看      한쪽 곁에 누워 물과 고기를 구름 아래서 바라보네.

草堂春睡今誰喚      초당에 봄잠 오는데 지금 누구를 부르리오!

思漢人心尙自寒      제갈량을 생각하니 마음이 오히려 절로 싸늘해지네

                - 송흠학 -

 

 

 

 

 

 

 

 

제8곡  학소대(鶴巢臺)

 

학소대  어느곳이던 학이 노닐던 곳이라 하여 학소대라 이름을 짖는가 보다

이곳도 바위위에 학이 많이 살았나 보다.

 

 

 

 

 

 

八曲巖泉怳復開      팔곡이라, 바위 샘물이 어렴풋이 다시 솟아오르고

鶴巢臺下耐沿洄      학소대 아래 물굽이 돌아흐르네.

莫嘆華表無歸影      화표(華表)가 돌아갈 그림자 없음을 한탄하지 마라

猶有杉松引得來      오히려 삼나무 소나무가 있는 이곳으로 오렴아

 

- 송흠학 -

 

 

 

 

 

날씨고 덥고 하여 학소대 아래서 한참동안 쉬어간다 시원한 골짜기 바람과 넓은 반석위에서

낮잠이나 자고갔으면 좋으려만 ..

 

 

 

 

학소대 아래서 찬물에 발담그고 도명산 갔다오는 산객들을 쳐다보면서

다음 9곡 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제9곡   파천(巴串)

 

   파천 ?? 한문은 파곶인데 왜 파천이라 하는지는 나두 몰르겠다

  그냥 예로부터  동네사람들이 파천이라 한다고 ....    

 

 

 

 

 

 

화양구곡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곳이다

넓은 반석위에 물이 흐르고 바람도 쉬어가는그곳이었다

건너편으로는 바위에 수많은 각자들이 남아있다

 

 

 

 

九曲心眸頓擴然      구곡이라, 마음과 눈이 갑자기 떠지는데

長松白石鴻靑川      긴 소나무와 흰 돌이 맑은 시내에 펼쳐졌네.

巴溪別是源頭水      파천 계곡이 특별히 발원의 머리가 되는 물인데

宛在中央一洞天      완연히 화양동 중앙에 있네

 

 

 

 

 

 

 

 

 

 

 

 

 

 

 

 

 

 

 

 

각자바위 뒷편으로는 넓은  너럭 바위에 기둥을 박은 흔적이 네곳이있다

아마도 예전에는 정자가 하나 우뚝하게 세워져 있었을법하다

건너편에서 보면 정자가 하나있다고 가정하면  정말로 운치가 있는 그런 풍경이다.

 

 

 

 

     그만 쉬고 가자

     쉬엄 쉬엄 내려오니 해가 서쪽 마루에 거려있다

    오랜만에 구곡답사 길이었지만  그리 호기심을 유발할 정도로 깊은점이 없다

     이미  9곡이 알려져있기에 답사가 아니라 구경이었다...

 

             mt

 

 

 

 

 

 

 

출처 : 십승지와구곡을찾아
글쓴이 : 주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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